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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화엄선으로 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인드라망의 노래, 혼문을 밝히다’

퇴우 정념 월정사 주지스님·월정사 화엄선연구소 이사장

- 분열 아닌 포용으로 완성되는 K팝 영웅서사…“판타지 너머, 화엄의 세계를 노래하다”

- ‘일즉다·다즉일’의 서사, 루미 통해 드러난 우주의 법칙…“하나의 목소리 전체 깨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적 흥행 돌풍이 심상치 않다. 북미에서는 정식 개봉이 아닌 주말 한정 싱어롱 특별 상영만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불과 이틀간의 상영으로 약 1,800만~2,000만 달러(한화 약 280억 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약 1,700개 극장 가운데 1,000곳 이상이 매진을 기록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를 두고 “넷플릭스 영화로는 보기 드문 성과”로 평가하였다. OST 역시 빌보드 67년 역사상 최초로 한 작품 내 사운드트랙의 4곡이 TOP10에 포함되는 기록을 경신하였다. 여기 더해 대표적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는 1위부터 7위까지 모두 ‘케데헌’의 삽입곡이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퇴우 정념 월정사 주지스님·월정사 화엄선연구소 이사장

그 이름만큼이나 특별한 정체성을 지닌 케이팝 그룹 헌트릭스의 여정은 단순한 박스오피스 성적이나 K-POP 콘텐츠의 독창성만으로는 작품의 의미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놀라운 전 세계적 현상은 음악과 영상미를 넘어서는 더 깊은 맥락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주인공 루미를 통해 관객 모두가 경험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풍부한 음악적 서사를 뛰어넘어 자기 수용, 정체성의 회복 그리고 자타가 손 맞잡고 세계와 연결되어 함께 빛이 되는 보편의 공명, 즉 화엄의 울림인 것이다.

세 명의 헌트릭스 멤버는 인기 아이돌이며 동시에 세상을 지키는 혼문의 수호자들로 그려진다. 여기서 ‘혼문(魂門)’은 단순한 봉인 장치나 판타지적 설정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의식의 가장 깊은 차원, 곧 내면 의식의 문을 상징한다. 누구에게나 자기 안에 선과 악,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혼문은 그 갈등과 조화를 매개하는 경계의 자리, 즉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의 ‘일심이문(一心二門)’을 상징한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인기 걸그룹으로 등장하는 헌트릭스. 사진=넷플릭스

악령은 이 혼문을 넘어 끊임없이 침투하려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것도 ‘사자 보이스’라는 아주 매력적인 남자 아이돌의 모습을 빌린 채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자타 경계 외부의 적대적 세력이라 할 수 없다. 실상은 각 인물 내면으로부터 비롯된 두려움과 상처, 억압된 정체성을 은유하고 있는것이다. 루미가 반(半) 악령으로 태어난 탓에 목소리를 잃은 이유 역시 곧 자신의 혼문이 완전히 봉인되지 못한 채 내면의 그림자와 맞서고 있다는 서사적 표현일 것이다.

불교의 화엄 사상은 바로 이러한 내적 갈등을 연기(緣起)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악령은 본래부터 독립된 실체로 자리하는 것이 아닌 분별과 집착에서 생겨난 관계적이며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완전히 소거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직면하고 인정하며 껴안아 포용할 때 어둠은 더욱 원대한 지혜와 힘의 원천으로 전환된다. 결국 그 과정의 끝에 드러나는 것은 모든 것이 고정된 실체 없이 서로 의존하며 성립한다는 불교의 궁극적 통찰, 곧 지혜의 ‘공(空)’이다. 혼문은 결국 인간이 자기 안에 공존하는 그림자를 받아들여 긍정할 때 그것을 통해 더 큰 세계와 연결되는 성장과 진보의 통로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룹의 리더이자 리드보컬을 담당하는 루미의 목소리를 되찾는 여정은 세 단계의 흐름으로 요약된다. 먼저 그녀는 반(半) 악령이라는 태생적 굴레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한다. 이것은 ‘자각’의 순간이다. 목소리를 잃은 이유가 내면의 그림자를 두려워했기 때문임을 깨닫는 순간 루미는 더 이상 숨지 않고 자기 자신을 마주한다. 그 자각은 곧 ‘회복’으로 이어진다. 잃었던 목소리를 되찾고 음악을 통해 혼문의 균형을 회복하는 장면은 단순한 능력의 복원만은 아니다. 아픈 상처와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껴안아 그것을 긍정할 때 더 큰 힘이 솟아난다는 역설을 보여주는 것이다. 화엄 사상에서 알 수 있듯 번뇌는 깨달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지혜로 전환될 수 있는 자원이자 성장의 선물과도 같다. ‘Golden’을 통해 울려 퍼지는 루미의 목소리는 그러한 전환적 상징의 울림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인기 걸그룹으로 등장하는 헌트릭스. 사진=넷플릭스

마지막으로 이 회복은 ‘연결’을 낳는다. 루미 개인의 치유가 팀 헌트릭스를 하나로 묶어 팬들과 세상을 지켜내는 힘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인드라망의 비유처럼 하나의 보석이 빛날 때 그 빛은 다른 모든 보석을 비추어 전체의 조화를 이룬다. 루미라는 존재의 각성과 회복이 곧 세계와 이어지는 화엄적 울림으로 번져 나가는 것이다. 혼문이 사라지고 어둠의 표식이 드러난 채 귀마와 사자 보이스 앞에 나타난 루미는 당당히 선언한다. ‘망가진 세상을 바로잡네. 어둠이 마침내 빛을 만날 때…. 상처는 나의 일부, 어둠과 조화. 우리의 진짜 노래가 여기에 울려 퍼져.’ 루미가 귀마 앞에 당당히 혼문을 다시 세울 것을 노래하는 대목은 앞서 언급한 세 단계의 자각, 회복, 연결을 통해 마침내 세계의 본래적 완전함과 회복을 선언하는 순간이다.

따라서 대표 삽입곡 ‘Golden’의 ‘함께라면 우린 빛나는 걸 알잖아. 우린 반드시 찬란해 질거야...영원히 깨질 수 없는 우린 무조건 빛날 거야. 난 이제 숨지 않아. 나는 지금 빛나고 있어. 원래 그랬던 것처럼...그게 바로 우리 삶의 이유야’라는 노랫말은 관객의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서사적 장치에 머무르지 않는다. 세계의 혼문이 회복되는 시퀀스와 교차하며 ‘회복’과 ‘연결’의 드라마를 관객으로 하여금 몸과 마음의 깊은 울림이 되는 결정적 순간으로 확장해 준다. ‘함께’해야 비로소 ‘우리’가 빛이 되고 세계가 될 수 있음을, 헌트릭스 멤버들은 유려한 선율로 노래하며 화엄이라는 장엄한 세계를 눈앞에 펼쳐 보이는 것이다.

헌트릭스의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루미 개인의 각성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가 목소리를 되찾고 혼문을 다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팀의 다른 멤버들이 끝까지 함께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상처 입은 한 사람이 치유될 수 있는 힘은 언제나 곁에 함께해 주는 타인과의 연대에서 비롯된다. 루미의 목소리는 그녀 자신의 것이면서 동시에 헌트릭스 전체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이는 곧 화엄이 담고있는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진리를 드라마 속에서 구현해 낸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여기에 등장하는 사자 보이스와 귀마의 서사는 또 다른 의미를 던져준다. 그들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루미와 헌트릭스가 마주해야 할 또 다른 ‘그림자’의 얼굴이다. 귀마 앞에서 울려 퍼지는 루미의 노래가 일시적으로 사자 보이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장면은 선과 악의 대립이 선명히 구분되는 이분법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연기적 관계 속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화엄의 세계에서 ‘악’이란 배제되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깨달음의 또 다른 조건이 될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품은 선악의 단순 대립을 넘어선 포용과 전환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건네어 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보여주는 세계는 단순한 판타지 애니메이션의 무대가 아니다. 그것은 상처를 수용하고 타인과 공명하며 세계와 연결되는 보살의 서사이다. 루미의 목소리가 벅차게 울려 퍼질 때, 관객은 단순한 음악적 감동을 넘어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도 내 안의 혼문을 어떻게 지켜내고, 그것을 세계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질문 앞에 마주 서는 순간, 헌트릭스가 전하는 화엄의 울림은 더 이상 스크린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이내 우리들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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