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췌장암 말기인 친형이 열이 40도가 넘어 응급실에 왔는데, 응급실에서만 7∼8시간을 대기했고 암 병동에 입원하는데도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업무 공백이 커지는 가운데, 인턴들마저 잇따라 임용을 포기하면서 의료 현장의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공의에 이어 인턴, 전임의의 이탈마저 가시화하고, 남아있는 의료진의 피로도가 누적되면서 "더는 버티기 쉽지 않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의료대란'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암 환자의 입원 항암이 축소·연기되면서 '암 병동' 규모도 축소 운영 중이라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시내 주요 병원에서 당초 수련계약서에 서명하기로 했던 의대 졸업생들이 서명을 거부하는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인턴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취득한 '막내 전공의'이다. 의사들은 인턴 1년 후 진료과목에 따른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전문의를 취득한다.
병원들은 구체적인 규모를 공개하기 꺼리면서도 대다수의 인턴이 임용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세브란스병원은 현재 집계 중이지만, 인턴 151명 중 90% 이상이 임용을 포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역시 현재 신규 인턴 123명 중 대부분이 임용을 포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병원 내 수련교육부에서 인턴의 임용 포기 등 구체적인 규모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외부에 공개되면 혼선이 있을 수 있고, 복지부에서도 병원별 현황을 알리지 지침을 정한 데 따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아산병원도 인턴 132명 중 대부분이 수련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22일 수련계약서 작성을 완료한 인턴이 올해 채용된 166명 중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확산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지금 상당히 높은 비율이 임용을 안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건 맞지만, 이번 주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본인의 결정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의료원 역시 신규 인턴 36명 중 대부분, 한양대병원도 67명 중 대부분이 수련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서울성모병원은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차원에서 인턴을 채용해 산하 병원에 배치하는 식인데, 내달 이곳으로 출근 예정이었던 인턴 58명의 거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고려대안암병원은 인턴들에게 시간을 주고 오는 29일에 최종 임용 여부를 파악한다는 방침이다.
병원들은 내달 초까지는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이다.
대부분의 인턴은 내달 1일자로 임용이나, 주말과 공휴일이 겹쳐 공식적으로는 내달 4일부터 정식 출근이다. 병원들은 늦더라도 이달 말에서 내달 초 사이에만 임용 의사를 밝히면 될 것으로 본다.
전공의 집단 사직에 이어 내달 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해야 할 인턴들마저 수련 포기를 선언하면서 현장의 혼란이 배가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는 주말 새 이송이 지연된 80대 심정지 환자가 결국 사망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3일 정오께 의식 장애를 겪던 80대 심정지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 갔으나, 전화로 진료 가능한 응급실을 확인하다 53분 만에야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 도착한 후 사망 판정을 받았다.
암 환자가 장시간 응급실에 대기하며 고통을 겪는 사례도 나왔다.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한 암 환자의 보호자는 "췌장암 말기인 친형이 열이 40도가 넘는 등 상태가 심각해 응급실에 왔는데, 응급실에서만 7∼8시간을 대기했고 암 병동에 입원하는데도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속상해했다.

그는 "원래 응급실에 의사 10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2명으로 돌아간다고 했다"며 "정부도 의사도 이해하지만, 아픈 사람들도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빨리 서로 타협해 이 상황이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각 병원은 신규 환자의 외래 진료와 입원, 수술 등을 일제히 줄이며 대응하는 중이다.
암 환자의 외래·입원 '항암치료'도 급하지 않을 경우 연기하고 있다.
수술을 40∼50%가량 연기·축소한 데 따라 입원환자도 많이 감소했다. 전공의들의 부재로 입원 환자를 적절히 관리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전반적인 재원 환자 규모를 줄이는 모양새다.
병원들은 환자가 수술 후에는 중환자실로 가야 하는데, 수술 자체가 줄어들다 보니 중환자실 운영도 자연스럽게 축소됐다고 전했다.
암 환자의 입원 항암이 축소·연기되면서 '암 병동' 규모도 축소 운영 중이다.
전남대병원에서 가족이 말기 암 판정을 받은 보호자는 "응급 수술이 끝나자마자 요양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유받았다"며 "내색은 하지 않지만, 퇴원을 서두르는 건 전공의 공백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암 전문인 화순전남대병원으로 전원할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입원이 가능한지 여부는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받고 결국 요양병원으로 가기로 했다"며 "병원에 남아 성심껏 치료해준 의료진에겐 감사하지만, 환자를 버리고 병원을 떠난 의사들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환자 목숨을 내팽개친 의사들을 다시 받아줘서는 안 된다"며 "의료 현장을 떠난 사람들의 의사 면허를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일반 병동보다 인력을 최대한 갖추려고 노력 중"이라며 "응급이나 위중증 환자는 가급적 수용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