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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법정칼럼]형사영상재판

김시원 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 판사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회다방면의 지형을 바꿔 놓았고 재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다수의 재판이 연기되고 피고인 또는 증인의 출석이 불가능한 상황이 속출하는 등 전례없는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이에 판사를 비롯한 소송 당사자가 ‘법정'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출석해 진행되는 전통적인 재판의 모습을 탈피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그중 하나가 영상회의(화상통신) 방식을 이용한 영상재판이다. 법원 외부는 물론 법원에서도 영상재판 전용 법정을 설치하고 관련 법령을 정비하는 등 시대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형사재판은 이러한 흐름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전자소송이 도입된 지 10년이 더 지난 현재까지도 형사재판은 전통적인 종이재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상회의 방식으로 변론기일을 진행할 수 있는 민사재판과는 달리 형사재판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 한하여 중계장치에 의한 증인신문만이 이뤄질 뿐이다. 형사전자소송이 시행되고 있지 않은 이상 영상회의 방식의 공판기일 진행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이다. 이러한 폐쇄성은 소송관계인의 접근성과 신속한 재판 진행을 저해하는 요인일 뿐만 아니라 법관이나 법원 구성원으로 하여금 형사재판을 기피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형사사법체계는 전통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다. 형사재판은 그 어느 재판보다도 절차적 안정성이 중시되고 거대한 국가권력 앞에 선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형사전자소송의 도입이 지체됐고 형사영상재판 역시 산발적인 논의가 있었을 뿐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당사자의 권리 보장을 저해하는 요소인 것만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통합된 전산정보처리시스템에 의해 영장의 신청·발부·집행이 이뤄지는 전자영장제도를 도입, 시행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압수수색영장 절차가 신속하게 이뤄짐으로써 영장 발부를 기다리며 피의자가 구금돼 있는 시간이 단축되는 효과가 확인되기도 했다.

최근 형사전자소송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형사사법절차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2024년 10월20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바, 형사전자소송을 향한 구체적인 발걸음이 시작됐다. 이제 기술의 발전이 변화시킬 형사재판의 모습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형사재판은 다양한 절차로 구성돼 있다. 크게는 공판 절차와 공판 외 절차(영장실질심사, 체포구속적부심, 보석심문 등)로 나뉘고, 공판 절차는 모두절차/공소사실답변/증인신문 및 서증조사/피고인신문/최후진술/판결선고 절차로 나눠 볼 수 있다. 이들 각각의 절차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바, 영상재판의 도입 가능성 및 그 구현 형태는 절차별로 달라질 것이다. 물론 필요성이 가장 큰 부분은 증인신문절차라 할 것인데, 다만 영상재판 방식의 증인신문은 피고인의 대면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고 증인 진술의 신빙성 판단에 어려움을 초래할 여지가 있으므로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편 형사소송법 제294조의2에 보장된 피해자 진술권의 일환으로 피해자로 하여금 영상회의 방식으로 진술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형사영상재판은 형사재판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절차적 정의의 보장이라는 형사사법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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