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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칼럼] “쓸개 없는 사람”

최건무 울산의대 강릉아산병원 외과 교수

쓸개는 전문용어로 담낭(膽囊)이라 부르며, 간의 우측엽과 좌측방형엽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주된 기능은 간으로부터 분비된 담즙을 농축, 저장시켰다가 맛있게 먹은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예부터 우리는 자기중심이 없는 사람을 빗대 “에이, 쓸개 없는 사람 같으니라구…” 내지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사람”이라는 등의 비유에 익숙해져 복부 장기 중에서 절대로 없으면 안 되는 장기로 여겨져 왔고 그 덕에 곰 쓸개는 보약으로 늘 상한가를 유지하는 것 같다.

쓸개에 생기는 질병 중 가장 흔한 것은 쓸개 안에 돌이 생기는 담석증인데 발생 원인은 아직도 가설이 분분하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9년의 경우 연령별로는 50~60대가 43.2%로 가장 많았고 70대 이상이 27.5%, 30~40대가 25.6%의 분포도를 보였다. 또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호발하고 있다. 증상은 오심과 구토를 종종 동반하는 우상복부 통증이 특징적이다. 담도성 통증과 담낭염의 치료는 담낭절제술이 치료의 원칙이고 최근에는 복강경하에서 담낭절제를 시행하기 때문에 과거의 고식적 수술방법보다 수술 자국도 거의 없고 일상생활로의 조기 복귀도 가능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물론, 절제 후에도 농축시키는 쓸개만 제거됐을 뿐이지 체내에서 분비되는 총 담즙 양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소화기능의 차이가 없다.

필자는 간, 담도계 질환의 수술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데 쓸개와 연관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자주 있다.

모든 생물이 생로병사의 대자연의 순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듯이 쓸개에도 병이 생기면 사랑하는 주인의 품에서 떠나야 하는 '담낭절제술'이라는 것을 받아야 하는데, 어느 날 담낭절제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로 이송되던 중년의 남성 환자분이 갑자기 “앞으로 계속 사업도 해야 하고 직원뿐 아니라 사업상 만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쓸개 없는 사람이란 소리만은 듣고 싶지 않다”며 “쓸개는 절대로 떼어내지 말고 돌만 꺼내 달라”고 수술을 완강히 거부했다.

어렵게 환자를 설득해 수술을 마친 후 저녁 회진 때, 병실로 모인 병문안객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수술 후 꺼낸 돌멩이를 보여주며 “담낭은 잘 절제됐습니다. 보이시죠? 이 돌멩이들…”라고 말하고 황급히 병실을 빠져나왔던 적이 있다.

환자의 간곡한 부탁대로 결코 '쓸개' 라는 용어는 쓰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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