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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일반

[피플&스토리]“농촌은 사람 살리는 곳…미래세대가 찾아오는 곳 만드는 게 꿈”

잘 나가던 학원사업 접고 귀농…대규모 사과농장 설립 김철호 애플카인드 대표

◇애플카인드 김철호 대표(왼쪽)·김경희 고문. 애플카인드 홈페이지 캡처

한반도 최북단 사과단지인 양구 펀치볼 '애플카인드' 농장 김철호(64) 대표는 특목고 입시의 전설로 통하던 '글맥학원' 원장이었다. 귀농을 꿈꾸던 김 대표는 2016년 30년간의 학원사업을 접고 '애플카인드' 회사를 설립했다. 양구 해안면에 축구장 25개(국제규격 최소면적 6,400㎡ 기준) 면적에 달하는 16㏊의 대규모 사과밭을 조성하고 인제 원통에는 가공장을 건립했다. 농장 운영 5년째를 맞은 김 대표와 직원들은 각종 규제의 상징인 접경지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가고 있다. 초여름 싱그러움을 간직한 사과나무 잎새가 눈부시게 빛나는 6월의 양구 펀치볼은 위태로운 남북관계 속에서도 내일을 향한 희망이 차오르고 있었다.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6차 산업과 농업을 연계해 고부가가치 창출에 매진하고 있는 김 대표를 지난 3일 그의 농장에서 만났다.

특목고 입시 전설서 농업CEO로

경쟁 문화에 상처…치유 위한 선택

성장호르몬·착색제 등은 사용 않고

사과즙 짤 때도 망가진 과일 안 써

기본 중시하다 보니 재구매율 높아

6차 산업화로 여는 새로운 미래

농장에 디자인 접목 '체험농장' 구상

전국서 가능성 보고 견학 오기 시작

군사규제 탓 땅 구하는 데 어려움도

청년 청춘 걸고 싶은 일터로 키울 것

■잘 나가던 학원장에서 농업을 선택한 계기가 궁금하다=“30년간 서울에서 운영하던 학원은, 이곳에서 공부하면 무조건 성적이 오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발 디딜 틈 없이 잘됐었다. 기초도 없이 시작한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공부하는 기쁨을 알아 가는 것을 보면서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지더라. 서울 한복판의 경쟁문화에 수없이 상처를 받기도 했다. 치유를 위해 찾은 산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됐다. 농촌이 사람을 살리는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농촌을 가꿔 사람이 떠나는 곳이 아닌 미래 세대가 찾아오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농업이 생소했을 텐데 어떻게 적응했나=“기본을 중시한다는 면에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는 강사가 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하는 것이다. 운영하던 학원은 자습 제도로 유명했다. 학생이 스스로 공부를 하게 만들고, 공부 습관을 심어줬다. 농장 경영도 기본이 중요하다. 일단 사과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장호르몬, 착색제를 비롯해 인간에게 나쁠 수 있는 물질은 쓰지 않는다. 사람 몸에 나쁘지 않은 비료를 위해 퇴비도 직접 배워서 만들었고, 아직까지도 재료 하나하나 숙성시키는 데 공을 들인다. 그렇게 나온 사과가 맛이 없을 수 없다. 재구매율이 높은 이유다. 사과즙을 짤 때도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망가진 자국이 있는 사과는 쓰지 않는다. 사과즙을 짜는 업체에 조금이라도 망가진 사과는 버려달라고 부탁했더니 이상한 눈으로 보더라. 그러나 기본을 중시하기로 한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농장 전체적인 디자인에도 세심하게 공을 들인 티가 난다=“뭐든지 디자인이 중요하다. 농장 전체가 하나의 테마로 아름답게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농장이 개성을 지닐 수 있도록 사업 초기 영국까지 찾아가 들여온 디자인을 농장에 접목시켰다. 한국 농업계에는 아직 농업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가 없어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일이었다. 기존의 농업을 넘어서는 농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인부터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기존의 디자인 테마와 어울리도록 체험농장을 구상 중이다. 6차 산업으로 성공하려면 농장은 사람들이 와서 먹고 자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과수원 파티를 비롯해 사과농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체험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 두고 구상 중이다.”

■기존과 다른 혁신 농업경영을 시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2015년 사과 재배를 결심하고 2016년 양구에 터를 잡았다. 그때부터 조금씩 땅을 늘리면서 사과나무를 심었고 사과밭 면적이 16㏊가 조금 넘는다. 지역에서 지금까지 시도된 적이 없는 대규모 농업이지만 이것만으로는 혁신이라고 말할 수 없다. 청년들에게 비전을 줄 수 있으려면 고부가가치 농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과를 제대로 키우는 데 주력하면서 동시에 공장을 만들어 2차 산업을 시작했다. 질 좋은 사과즙을 짜겠다는 생각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람들이 먹고 자고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광농업도 구상 중이다. 1차 산업인 농업을 6차 산업으로 연결시켜야 진정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새로운 시도에 군사규제는 힘든 장벽일 것 같다=“체험농장을 만드는 일부터 쉽지 않다. 농장이 언덕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보니 평지를 꼭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군사 규제 때문에 땅을 구하기가 어렵다. 전 세계를 다녀봐도 양구 펀치볼만 한 지역이 없다. 사과 체험 공간이 생긴다면 아름다운 풍광에 한반도 분쟁지역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져 세계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 이미 전국에서 양구 해안의 가능성을 보고 견학을 오기 시작했다. 우리 농장의 철학과 이곳의 지리적 조건에 모두가 감탄한다. 한국 농업과 6차 산업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만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가능한 영역에서부터 군사규제를 하루빨리 풀어 농업 소득 증대로 연결시켜야 한다.”

■신종 감염병의 시대다. 농업 분야도 예외가 아닌데=“맞다. 외래 감염병인 과수화상병이 제일 무서운 존재다. 밀식 재배를 시작했는데 화상병이 번지는 속도가 빠를 수 있어 심혈을 기울여 재배법을 공부 중이다. 최근에는 지역 농민들과 사과연구회를 구성해 지역 특성에 맞는 재배법과 병해충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젊은 팀장들은 외국과 국내 사과 주산지로 연수를 다녀오며 노하우를 습득하고 있다. 양구의 경우 기온이 낮아 상대적으로 안심되는 측면이 있지만 지구온난화가 무서운 속도로 진행 중이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 겨울철 동해 피해도 지속적인 걱정거리다. 농업이 식량 안보 차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지만 아직까지 병해충이나 농업 재해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농민 개인에게 온전히 맡겨져 있다. 사회적 손실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지자체나 국가 차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농업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에디슨이 처음 전기를 만들었을 때, 전기차가 다니는 시대를 상상이나 했을까. 아마존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지금과 같은 사업 규모는 꿈꾸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이 과수원이 어떻게 성장할지 아직 모른다. 우리는 어떻게 발전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농업의 '첫날'을 사는 셈이다. 그 불확실한 성장의 첫날에서 말 그대로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우리가 바라는 비전은 100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농장이 아니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시도로 획기적인 농업의 미래를 열어야 하기에 아직까지 농장은 터를 잡아 가는 중이고 그래서 순수익은 마이너스다. 다만 가까운 미래에 수확량 1,000톤을 달성할 것이고, 조금 더 먼 미래에는 아들의 아들이 일할 수 있는 농장, 지역 청년들이 청춘을 걸고 싶은 일터를 만들어 갈 것이다. 좋은 철학이 기본이 되고, 사람과 지역을 살리는 새로운 농업, 지금까지 보지 못한 그런 농업의 미래를 꿈꾼다.”

양구=박서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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