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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만난 세상]사실(事實)과 진실(眞實)

조민혁 춘천지방법원 판사

'사실'의 사전적 의미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이고, 진실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 없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사실과 진실은 같은 의미로 통용되지만 법적인 관점에서 사실과 진실은 사뭇 다르다.

민사든 형사든 사건 당일 현장에 있던 당사자나 증인을 제외하고 실제로 그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은 없다. 판사도 마찬가지라 당사자의 주장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나 증언 등을 종합해 결론을 정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서 '사실'과 '진실'의 차이가 드러나는데 법정에서 현출된 증거 또는 증인의 증언 등이 '사실'에 관한 것이라면, 그러한 사실을 포함해 사건 당일의 거짓 없는 모든 사정이 '진실'에 관한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얻지 못한 일부는 '그날의 진실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판결이 잘못됐다'면서 종종 재판부를 격하게 몰아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날의 진실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도 제3자인 판사로서는 그것을 전부 알 수 없고 또 미리 알아서도 안 되는 것이며 그렇기에 판사는 '진실'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법률적으로 의미 있는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을 토대로 사건의 결론을 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재판의 본질이다.

1심 형사재판을 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무죄 판결과 유죄 판결을 한 두 사건이 있는데 두 사건 모두 대법원까지 이어진 공방 끝에 각각 1심 결론 그대로 확정됐다.

무죄 판결을 했던 사건에서 검사는 제출된 증거와 증언 등을 종합하면 범죄가 충분히 증명됐다고 주장했는데 피고인의 범죄 전력이나 여러 정황에 비춰 피고인이 실제 범죄행위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기는 했다. 그러나 직접 증거는 없었고 피해자 등 사건 관계인들의 진술을 하나하나 따져 보니 핵심적인 부분에서 서로 모순되거나 분명치 않은 점들이 다수 발견됐다. 결국 재판부 합의 끝에 피고인이 유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이른바 '합리적인 의심(모든 의문이나 불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경험법칙에 기해 증명이 필요한 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의 개연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문)'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범죄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려워 무죄 판결을 했다.

한편 유죄 판결을 했던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처음부터 일관되게 범죄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법정에서 본 피고인의 모습 태도 등에 비춰 피고인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에서 확인된 사실관계에 비춰 피고인의 주장대로라면 객관적으로 성립되기 어려운 많은 사정이 있었기에 결국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범죄가 증명됐다고 봐 유죄 판결을 했다.

두 사건 모두 객관적인 증거와 증인의 증언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을 토대로 각각 무죄 판결과 유죄 판결을 했지만 두 사건 모두 공소장에 기재된 바로 그날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실'은 여전히 알 수 없다.

재판을 통해 나타난 '사실'이 전부 다 '진실'과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재판은 '사실'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이고 그 '사실'과 '진실'의 간극이 좁을수록 당사자들이 재판부 판단에 더 수긍할 수 있을 것이기에 오늘도 넘기는 사건기록 한 장 한 장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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