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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신조어로 보는 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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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상지대 FIND칼리지 조교수·응용언어학

신조어란 말 그대로 ’새로 생겨난 단어‘입니다. 어느 시대나 신조어는 나타나기 마련이며 생성과 소멸의 주기 속에서 대중의 공감을 얻기도 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조어가 관심을 받는 것은 변화하는 세상의 모습과 사회문화적 세태의식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신조어는 ‘중꺽마’나 ‘입틀막‘처럼 대부분이 줄임말의 형태입니다. 휴대폰 문자와 카톡, SNS를 통해 빠르고 간단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대적 특징이 반영되어있습니다. 게다가 ’득템(得+ item)’, ’뇌피셜(뇌 + official)‘ ’노잼(no + 재미)처럼 우리말과 영어의 합성(code mixing)은 보다 정교해지는 추세이고요, ’꿀잼‘, ’개꿀잼‘, ’핵잼‘ 처럼 생각지도 못한 단어를 접두사로 쓰면서 복잡한 단계도 단순화 시켜버립니다. ’폭풍오열‘, ’맴찢‘, ’웃프다‘, 심쿵’ 같은 말은 직설적이면서도 풍부한 감정 표현으로 정서적 공감을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대 간 어감의 차이가 극명히 다른 말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접두사 ‘개’인데요, ‘개’는 원래 부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가령, 죽음, 고생, 차반, 값, 수작이란 말에 ‘개’가 붙으면 ‘쓸모없거나 보잘것없는’ 이란 의미가 가중되거나 ‘매우 심한’이라는 뜻이 덧붙여집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개싫다’, ‘개비싸다’, ‘개이득’, ‘개웃김’, ‘개멋짐’과 같이 많은 단어에 ‘개’를 붙여 사용하고 있고 더 나아가 ‘개’의 의미를 그저 ‘많은’ 이란 뜻으로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그냥 웃고 넘어가야 할지 자초지종 설명을 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게 세대 차이일까요?

애초에 생기지도 말았어야 할 신조어도 있습니다. 최악을 꼽자면 단연코 ‘oo충(蟲)’이지요. ‘충’은 벌레라는 뜻입니다. 듣기도, 말하기도 거북한 급식0, 맘0, 한남0, 틀딱0이란 말이 여전히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사실 벌레란 말은 도무지 긍정적인 조합을 떠올리기 힘든 정서적 거부감이 있습니다. 하물며 특정 집단과 세대, 성별을 막론하고 지칭되는 이런 말은 누가 봐도 ‘혐오어’입니다. 표현의 자유로도, 유머코드나 언어유희로도 용납하기도 어렵습니다. 혐오와 혐오어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은 부족한 것보다 넘치는 것이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 것입니다.

들을 때마다 씁쓸하고 화가 나는 신조어도 있습니다. ‘검새‘, ’판새‘, 그리고 최근에 등장한 ‘의새’가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자 선망받는 직업군의 조류화(鳥類化)에 대한 배경과 분석은 구구합니다만, 언어적 추론만 해보면 이렇습니다. ’새‘는 사람이란 뜻의 ’쇠‘가 변형된 것이고 쇠에는 부정적이고 얕잡아 본다는 의미가 있어, 결국 ’새‘는 사람(직업)을 낮추어 일컫는 말입니다. 비슷한 예로 깍새(이발사)와 딱새(구두닦이)가 있지요. 비하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만, 이들 직업군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와 사회적 책임감이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불만과 우려, 비판과 비난이 반영된 신조어가 아닐까 합니다.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고 신조어는 우리가 당면한 사회 문제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부당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넘어 최근에는 혐오와 차별, 조롱과 비하가 넘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하와 혐오는 결코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으며 사회갈등만 더 초래할 것입니다. 혐오어와 비하어에 대한 사회 공동체적인 자정 노력과 제재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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