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의료 현장 이탈은 사형선고…제자에게처럼 환자에게도 애정 가져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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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증질환연합회 정부에 "실질적 대책 내놔야" 강한 질타
의사들 '대화 창구' 못 만들고, 정부는 '복귀 명분' 제시 못해
정부, 이번주부터 근무지 이탈 전공의들에 '면허정지' 본처분
전의교협, 25일부터 사직서 제출…근무 시간 주 52시간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의정갈등 사진=연합뉴스

속보=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으로 촉발된 '의-정(醫政) 갈등'이 한 달이 넘도록 이어가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대학별 의대 정원을 발표하며 '2천명 증원'에 쐐기를 박았고, 의대 교수들은 이에 반발해 집단 사직과 근무 축소에 돌입하기로 했다.

정부는 '3개월 면허정지'로 전공의들을 압박하고 있지만, 전공의들은 꿈쩍하지 않고 있다. '면허 영구박탈'이 아닌 이상 의사라는 직업은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환자들은 "제발 환자들을 먼저 생각하라"며 정부와 의사들 모두에게 전향적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정 갈등의 장기화에는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이 의료 현장에 미친 타격이 생각보다 적은 상황이 역설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공의들이 있는 대형병원들이 축소 운영을 하면서 대형병원은 '중증·응급환자' 위주로 재편되고, 경증 환자들은 병·의원급 의료기관으로 빠져나가면서 의료 현장의 혼란은 다소 안정되는 추세다.

오히려 이번 기회를 대형병원의 지나친 '전공의 의존' 관행을 줄이고, 경증환자가 대형병원을 찾는 행태를 없애는 계기로 삼자는 목소리가 많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2020년 의대 증원 추진 당시 정부가 대폭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의료 현장의 극심한 혼란 때문이었는데, 이러한 혼란이 조금씩 안정된다면 정부로서는 '백기'를 들 이유가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의정갈등 사진=연합뉴스

'면허정지'라는 초강수에도 전공의들이 꿈쩍하지 않는 데는, 정부의 행정처분이 '의사 신분' 자체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면허정지 조치는 '3개월'에 불과하며, 이르건 늦건 사태가 해결되고 면허정지 기간이 끝나면 전공의들은 언제든지 의료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결국 1만여 명에 달하는 전공의들에게 기대지 않고서는 의료 시스템의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의사집단 전체의 전폭적인 지지도 이들에게 힘을 싣고 있다.

'예비 의사'인 의대생들은 동맹휴학에 들어갔고, 의대 졸업생들은 인턴 임용을 포기했으며, 의대 교수들은 집단사직을 예고하는 등 전체 의사집단이 하나로 똘똘 뭉쳐 이탈 전공의들을 지지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한다면 먼저 '백기'를 드는 것은 지난 2000년, 2020년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의사 집단행동 정부 대책 설명하는 박민수 복지부 2차관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정부와 의사들 모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로서는 국민들의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환자들의 고통이 커지면 의대 증원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 점차 식을 수 있으며, "정치적으로 무능하다"는 여론과 함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면허정지'로 엄포를 놓고 의사들의 '대화 창구' 마련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전공의들이 복귀할 수 있는 '명분'을 제시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지적도 받는다.

50대 한 시민은 "의대 증원을 지지하고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전공의들이 복귀하게 만들려면 정부가 어느 정도 '복귀 명분'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의사들도 돌파구를 제시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대화 창구' 마련을 줄곧 요구하고 있지만, 좀처럼 진전의 기미가 없다.

의료공백 장기화로 의사들은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집단 이기주의'에 매몰됐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간혹 글을 올릴 뿐, 사태의 주인공들인 전공의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정부에 대한 "강경 투쟁"만 외칠 뿐 협상 여지는 두지 않고 있다.

의대교수들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삐걱거리고 있다. 협상하자는 온건론과 집단행동의 수위를 높이자는 강경론이 부딛치고 있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전국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등 대응 조직마저 나뉘어 있다.

정부와 의사들의 이러한 모습에 환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정부에 "무대책의 대책 말고 실질적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질타했다.

의사들에게는 "교수 1명이라도 의료 현장을 이탈하는 것은 사형선고"라며 "제자에게처럼 환자에게도 애정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강대강 대치 속에 국민들은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며 "모든 정치력을 발휘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조속한 진료 정상화 해법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대화 자리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전의교협은 오는 25일부터 사직서를 내기로 했다. 이 단체는 전국 총 40개 의과대학 중 39개 대학이 참여하는 단체로, 교수협의회가 없는 1개 대학을 제외하고 '빅5'를 포함한 대부분의 의대가 참여하고 있다.

전의교협은 또 25일부터 교수들의 외래 진료, 수술, 입원 진료 근무 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으로 줄이기로 했다. 다음 달 1일부터는 외래 진료를 최소화해 중증 및 응급 환자 치료에 집중하기로 했다.

전의교협과는 별개 단체인 교수 비대위는 지난 22일 19개 대학이 참여한 가운데 온라인 회의를 열고 현황을 점검했다.

교수 비대위는 이 회의에서 정부가 2천명 증원을 철회하게 하고, 협상의 장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을 활동 목표로 설정하면서 25일부터 사직서 제출하기로 한 계획을 재확인했다.

아울러 주 52시간 근무, 외래 진료 최소화 등 전의교협의 안을 적극 지지한다고 했다.

그간 의대 교수들의 중지를 모아온 두 비대위 단체가 합심해 의대 증원 등 정부 정책에 분명하게 반대 뜻을 밝힌 셈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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