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가장 우울한 나라’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중국인들은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또는 ‘군자의 나라’로 일컬어 왔다. 공자도 자기의 평생 소원이 뗏목이라도 타고 조선에 가서 예의를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예의란 상호 존중이라는 전제에서 관계를 유지하고 상호 작용을 이어나가기 위한 사회적 규범이다. 우리는 그런 민족이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Morning Calm)’, ‘은자의 나라(The Hermit Nation)’ 등은 19세기 후반 서구권에서 구한말 조선을 소개할 때 사용했던 초기 번역어이자 관용적 어구다. 당시 서구인들은 조선이 어떤 나라고 그 국민들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200년이 넘은 하멜이나 마르티니의 오래된 단서에 기대 ‘신비한 동방의 나라’를 상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구한말 조선은 강대국에게 힘을 빼앗긴 국가였다. 그래서 이 같은 별칭들에는 그런 의미가 함축돼 있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우리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시간이다. 전 국민이 ‘붉은 악마’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 또 전쟁으로 잿더미만 남았던 국가가 원조를 받던 처지에서 이제는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고 민주주의까지 이뤄 낸 저력을 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다이내믹 코리아’가 생동하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슬로건이 됐다. 하지만 이후에는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가 극심한 한국 사회를 가리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최근 미국의 저명한 작가이자 인플루언서 마크 맨슨이 한국을 방문한 후 ‘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려 관심을 끌고 있다. 맨슨은 이 영상에서 높아지는 한국인의 불안·우울증과 자살률 추세를 언급하며 우리 사회를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로 평가되는 경쟁의 일상화에 갇혀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그의 말이 모두 맞지는 않겠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결코 적지 않다. 과연 지금 우리는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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