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소설]세기의 사냥꾼<9856>

너구리의 처세술 ③

정 교사는 너구리를 관찰하다가 다누기 교감이 연상되어 쓴웃음을 지었다. 일본인 젊은 교사들이 말한 대로 정말 눈 주위에 검은 털이 테두리처럼 나 있는 상판이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는 다누기 교감과 닮았다. 거기다가 쓰레기터에서 나와 더러워진 넝마털이 다누기 교감의 옷과 비슷했다. 다누기 교감은 늘 몸에 맞지 않는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다누기 교감은 학교 식당에서 파는 음식도 먹지 않았다. 식당에서는 아주 헐값으로 음식을 팔았으나 다누기 교감은 그것도 비싸다고 늘 집에서 도시락을 가져 왔다. 다고안(무조림)과 우메보시(매실조림)만 있는 도시락이었다. 학교에서 어쩌다가 회식을 하면 다누기 교감은 남은 음식을 싸가지고 갔고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 학교 바로 옆에 낡은 셋집을 얻어 살았다. 그러나 소문에 의하면 그는 경상도 번화가에 큰 집을 갖고 있으며 그 집에서 세를 받고 있다는 말이었다. 일본인 젊은 교사들은 너구리가 둔갑하는 재주가 있듯이 다누기 교감에게도 비상한 재주가 있다고 수근거렸다. 다누기 교감은 교육열이 왕성하거나 유능한 교사가 아닌데도 12년간이나 교감직을 지켰다. 그동안 교장이 세 번이나 바뀌고 수십 명의 교사가 학교를 떠났으나 교감은 건재했다. 몇 번이나 교감 자리에서 쫓겨날 위기가 있었으나 그는 그때마다 잘 넘겼다. 다누기 교감은 누구와도 다투거나 싸우지 않았다. 상사에게는 비굴하게 보이기까지 하면서 복종했고 동료나 부하들에게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내주지도 않았고 교장이나 장학사 등 좋은 자리에 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쓰레기터에 나타난 너구리들도 다른 짐승들과 다투거나 싸움을 하지 않았다. 너구리의 주변에도 생존 경쟁자가 많았으나 너구리는 늑대를 보면 도망갔고 자기보다 덩치가 작은 살쾡이와도 먹이 다툼을 하지 않았다. 교활한 여우에게도 늘 먹이를 빼앗기고 있었으나 그래도 늘 같이 다녔다. 사나운 오소리 비위도 잘 맞춘듯 오소리가 살다가 버리고 간 빈집을 집세도 내지 않고 공짜로 쓰고 있었다. 오소리는 정 교사의 눈치도 잘 살피고 있었다. 처음에는 먼 곳에서 동정을 살피고 있다가 정 교사가 자기를 해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자 차츰 가까이 왔다. 그리고 정 교사 집의 쓰레기터를 자기의 먹이터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밤에만 쓰레기터를 점령했다가 나중에는 대낮에도 점령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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