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때 교회 청년회가 주관하는 수련회에 참가해 2박3일의 동해안 해변 야영 기회가 있었다. 양양의 낙산해변은 1960년대엔 조산해수욕장으로 알려졌다. 동해안은 모두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이었다. 백사장의 모래가 곱고 깨끗했다. 바다는 푸르고 고요했다. 태양이 모래를 태우는 폭염의 7월인데도 망루의 라이프가드(Life guards)는 한가로웠다. 조산초등학교를 감싸고 해변의 방풍림 역할을 하는 소나무 숲은 싱그러움을 더해주었다. 오염되지 않은 해변 모래톱은 쪽빛바다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대양(大洋)을 향한 강원도의 앞마당인 동해에서 그쪽으로 한참을 가면 울릉도, 독도가 있다. 멀리 보이는 밤바다의 불빛, 하늘과 닿은 수평선에 오징어선단 집어등은 정성들여 장식한 루미나리에를 연상케했다. 바캉스의 계절이 다가왔다. 올여름은 예년에 비해 10일 이상 서둘러 개장한다. 부산 해운대, 광안리, 송도해변은 1일 개장해 피서인파를 부르고 동해안의 경포, 낙산해수욕장등 삼척 끝에서 고성 최북단의 해변은 서둘러 피서객 맞이에 분주하다.
지금의 여름해변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어지럽다. 무질서한 주차장, 쓰레기로 오염되고 있는 백사장, 그리고 가까운 바다는 인간의 광기(狂氣)에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다. 피서객들은 더러운 흔적을 남긴 채 떠난다. 온갖 쓰레기를 백사장에 묻어버리고 떠난다. 버려진 양심은 지역주민과 공무원의 몫이다. 보물찾기하듯 갈퀴로 긁고 트랙터, 경운기를 동원해 백사장을 갈아엎어 쓰레기를 거둔다. 1960, 70년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진풍경이다. 어느 조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도 피서지로 동해안을 제일 선호했다. 피서를 떠나도 뭉개고 더럽힌 자리 없이 조용하게 왔다가 즐겁게 돌아가는 생활습관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잃어버린 양심, 기초질서를 내동댕이칠 우리의 흐트러진 흉한 모습이 올여름에는 얼마나 쌓이려나. 경포, 낙산 등 도내 대형 해변에는 연 1,000만명 이상 피서인파가 전국에서 몰린다.
경포해변엔 지난해 7~8월에 배출된 쓰레기가 1,000톤을 넘었다는 자치단체의 집계다. 청소관리팀 직원들은 “먹고 마시고 난 후 빈병이나 팩, 남은 음식찌꺼기 등을 해변에 그대로 버린다”며 “바닷바람에 비닐, 과자봉지, 종이조각 등이 날릴 때는 유명해변이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선진국민, 문화인을 자처하는 모습에서 “아직도 멀었다”며 한심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혀를 찬다. 도내 각 지자체가 쓰레기 1톤을 처리하는데 드는 비용을 10만원 안팎으로 산정하는 것을 감안하면 경포해변의 쓰레기 처리 비용은 1억원이 훨씬 넘을 것으로 짐작한다. 산과 계곡 등 피서지 역시 예외는 아니다. 금수강산이 쓰레기로 매년 몸살을 앓고 있다. 마을에서 자체 운영하는 피서지도 쓰레기 처리에 걱정이 크다. 올 여름은 해변과 우리의 산하를 보호하기 위해 시행하다 중단되었던 입장료 징수를 부활시켜서라도 쓰레기 양을 줄이고 환경보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최선의 방법은 '쓰레기 되가져가기' 운동을 강력히 펼치고 피서지 청소와 쓰레기 안 버리기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름다운 강원의 산하가 쓰레기 더미로 뒤덮이지 않게 국민 스스로 환경미화원이 되어야 한다. 가정에선 생활쓰레기 분리수거가 정착되고 있는 단계인데 피서지의 쓰레기 수거는 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일까. 피서지에 버려진 양심을 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