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야말로 지독한 엄동설한(嚴冬雪寒)이다. 세상이 온통 냉기다. 그러나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 아닌가. 조정권의 '산정묘지(山頂墓地)' 연작 그 첫 시가 떠오른다.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 터진 결빙을 노래한다./ (…)/ 만일 내 영혼이 천상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의 일각을 그리워하리./….”
▼겨울의 절정이다. 소한과 대한 사이에 든 시기다. 절기의 명칭으로 보면 겨울 추위는 입동에서 시작해 동지·소한을 거쳐 대한 때 정점에 이르러야 맞다. 하지만 이는 중국인들의 경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연중 가장 추운 시기가 양력 1월15일을 전후해서다. 그래서 속담에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고 했다.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는 속설도 있다. 대한이 하루 앞이니 추위가 수그러들어야 옳다.
▼여기저기서 춥다고 아우성이다. 한파의 원인이 지구온난화에 의한 현상이라니 헷갈린다. 우리는 혹독한 추위를 겪고 있지만 지구 한편에서는 기온이 상승해 '겨울이 미쳤다'고 투정한다는 소식이다. 지난 여름 폭염특보에 시달렸음을 상기하면 날씨도 살림살이처럼 양극화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굶주림과 추위가 동시에 닥친다는 기한교박(饑寒交迫)이 실감되는 세태다.
▼구제역 재앙에 한파까지 덮쳤다. 혹독한 시련이고 보니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조차 가증스럽다. 아무리 추워도 곁불을 쬐지 않았던 선비의 지조를 되새긴다. 더 이상 부패해서는 안 되겠기에 결빙시킨 혹한이리라. 시린 손으로 시경(詩經)을 들춘다. '한고청향 간난현기(寒苦淸香 艱難顯氣)'라는 구절이다. 매화는 추운 겨울의 고통을 겪어야 맑은 향기를 내고 사람은 어려움을 겪어야 기개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고매한 '설중매(雪中梅)'는 어디에 있는고.
용호선논설위원·yonghs@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