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이 갰지만 후덥지근하기는 마찬가지다. 언제 또 비가 내릴지 알 수 없어 불안하다. 윤흥길의 소설 '장마'가 그렇다. 소설은 아들이 군에 입대해 전사한 외할머니와 빨치산 대원으로 활동하는 자식을 둔 친할머니가 한집에 사는 이야기다. 6·25전쟁에서 빚어진 비극이다. 끝내는 두 분이 화해를 하고 친할머니가 조용히 눈을 감는다.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이 마지막 문장이 장마 끝 햇볕인 셈이다.
▼예부터 '오뉴월 장마'라고 했다. 양력으로는 6~7월이다. 북태평양고기압으로 생긴 장마전선이 몰려오는 시기다. 음습한 날이 한 달여, 지루하게 이어지는 제5의 계절이다. 장마는 한자로 '임우(霖雨)' '임우(淋雨)'라고 쓴다. 빗물이 숲을 이룬다는 뜻이다. 장대비, 집중호우를 타고 오는 불청객은 수마(水魔)라고 한다. 그래서 “삼 년 가뭄은 견뎌도, 한 달 홍수는 못 견딘다”는 속담도 있다. 장마도 휴식이 있으니 '마른장마', 비가 오다가 금방 개고 이를 반복하는 '건들장마', 추림(秋霖)이라 했으니 '가을장마'다.
▼장마철에는 바람이 끼어들어 태풍, 해일, 홍수, 우박, 냉해 등의 현상으로 절정을 보인다. 이때가 특수니 '장마 마케팅'이다. 옛날 짚신장수와 우산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는 날이 쨍쨍하든 비가 오든 늘 근심이었으나 요즘은 둘 다 좋은 날씨다. 비가 오면 제습제와 우산이 잘 팔려 좋고, 맑은 날에는 냉방용품과 음료수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날씨가 곧 돈이다. 농어촌은 물론이고 산업현장과 유통업계 어느 곳이나 기상정보가 필수인 시대다. 기상캐스터, 기상컨설턴트, 인공기상학 등이 인기다.
▼장마예보가 48년 만에 퇴출당했다. 기상청이 올해부터 장마 기간을 예보하지 않기로 했다. 기상이변으로 “장마가 시작됐다. 물러갔다”는 말이 불필요해졌다는 게 이유다. 인간들이 예측 가능한, 투명한 사회를 지향하지만 날씨가 비웃는 꼴이다. 환웅(桓雄)이 인간세계를 다스리기 위해 대동한 천부인 셋(풍백, 우사, 운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기상이변은 자연의 질서에 도전하는 문명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경고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