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강원논단]논밭 두렁 태우지 맙시다

1996년 4월, 강원도 고성.

이글거리는 새빨간 불덩이에 모든 생명은 검은 숯덩이로 변하고 산은 새까매졌다.

KBS 환경스페셜 ‘고성 산불 그 이후’를 찍으면서 화마가 할퀴어 불모지로 변해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곳에서 신음하는 생명들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지난 2000년 4월, 삼척과 강릉, 고성을 휩쓴 동해안의 산불 피해지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상처를 그대로 보듬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의 주 소득원이었던 송이 생산 기반이 무너져 아직도 그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5년 4월.

천년 이상 버텨온 고찰 양양 낙산사가 불과 몇 시간 만에 불에 타 없어졌고 낙산사 동종, 원통보전 등 보물 2점과 유형문화재 4점이 함께 소실됐다.

산불은 억겁의 세월 동안 자자손손 이어오던 생명들을 순식간에 죽이고, 경관훼손과 생태고리를 끊어 환경 파괴를 유도하기도 하고 천년의 문화를 삽시간에 사라지게 하기도 한다.

짧은 기간 내에 복구할 수 있는 문화재나 20∼30년이면 스스로 복원되는 생물다양성 유지는 그나마 다행이나 대형 산불로 순간적으로 배출된 엄청난 온실가스는 앞으로 100년 이상 하늘을 떠다니며 이 지구를 덥힌다니 가히 공포의 대상이다.

2000년 동해안의 산불이 자동차 100만대가 1년간 배출하는 것보다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켰다는 기록을 보면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탄소 흡수력을 극대화하도록 기존의 숲을 보전하고 유지하는 일에 매진하려는 노력들이 허탈해진다.

경관훼손과 환경 파괴보다도 산불의 치명적 폐해는 숲이 가지고 있는 탄소 조절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숲은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훨씬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만 일단 손상되고 병들거나 죽으면 축적했던 탄소를 방출함으로써 오히려 숲 생태계는 탄소 배출원으로 변신할 수 있다.

최근 산림청이 지난 5년간 검거된 산불 실화자 612명의 특징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산불 원인자의 78%가 그 고장 사람이고, 76%가 60세 이상 노인이며, 64%가 논밭 두렁이나 쓰레기를 소각하다가 산불을 발생시켰다 한다.

결국 산불의 가장 큰 원인은 지역 주민들의 무심한 행동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본업은 제쳐놓고 24시간 산불예방과 진화작업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공무원들만으로는 산불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논밭 두렁 태우기는 땅 속에서 월동하고 있는 농업 해충인 나방이나 매미 종류인 진딧물을 태워 죽이기보다는 지상부에 노출되어 있는 농업 해충을 잡아 먹으려는 천적인 무당벌레나 딱정벌레, 사마귀 그리고 풀잠자리들을 주로 죽임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농약을 살포해야 하는 농생태계에 악영향을 주는 행위이다.

논밭 두렁 태우기는 산불을 일으켜 순식간에 막대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여 저탄소 녹색운동에 역행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토양과 농민과 소비자들에게 유리한 생물 천적에 의한 환경친화적인 농업을 포기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조심하고 준비한다 한들 불을 지펴 놓고 불을 막을 수는 없다.

개인은 물론이고 마을 단위로 공동 소각하는 현재의 관행도 당연히 근절되어야 한다.

억새 태워 축제 한다고 호들갑을 떨던 화왕산의 방화선이 쉽게 무너지는 사고를 보지 않았는가?

우리나라 산불은 자연 발화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부분 인재다.

지역 주민들에게 논밭 두렁 태우기 자체를 절대 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심어 놓는 철저한 교육 없이 소방대원의 훈련, 소방 설비 등에 대한 투자만 한다면 내년에도 산불은 날 것이다.

이웃을 신고하고 잘 아는 지역 주민들을 모질게 벌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 심각한 피해를 생각해 엄격하고 강력한 법의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해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저탄소 녹색운동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논밭 두렁이나 농산 쓰레기소각을 하지 않는 간단한 일부터 시작해야 옳다.

이강운 농학박사 홀로세생태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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