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속화철도 개통을 앞두고 강원도 접경지역 지자체들 사이에서는 기대와 위기감이 공존하고 있다. 서울 용산에서 속초까지 99분, 인제까지 80분대 주파는 수도권 관광객의 유입을 늘리겠지만, 역설적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속화해 지역 내 소비를 위축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철도망 확충이라는 하드웨어의 혁명이 ‘빨대효과’로 인한 지역 소멸의 가속화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의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 해법으로 예술가가 지역에 거주하며 작품을 창작하고, 관광객은 그 과정을 체험하는 ‘아트 레지던시(Art Residency)’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 화가의 고향에 예술가들이 모여 살다…‘미석예술인촌’
양구군은 국민화가 박수근 화백의 고향이라는 자산을 단순한 전시 공간으로 머물게 하지 않았다. 2002년 박수근미술관 개관 이후, 미술관 인근에 ‘미석예술인촌’을 조성해 전업 작가들이 입주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박수근의 예술 세계를 잇는 후배 작가들이 상주하며 작품을 생산하고, 국내외 예술 활동의 매개체 역할을 수행한다. 관광객들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한 뒤, 예술인촌을 거닐며 현재 진행형인 예술가들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대도시의 미술관이 흉내 낼 수 없는 양구만의 ‘살아있는 예술 생태계’를 구축한 사례로, 체류형 아트 투어의 모범 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 폐광의 검은 가루가 예술이 되다… 정선 ‘삼탄아트마인’
정선 ‘삼탄아트마인’은 지역의 쇠락한 산업 유산(삼척탄좌 정암광업소)을 예술 생산 기지로 탈바꿈시킨 역동적인 현장이다. 이곳은 멈춰버린 탄광 시설을 그대로 활용한 ‘마인(광산) 갤러리’와 함께, 국내외 작가들이 머물며 작업할 수 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작가들은 검은 석탄 가루와 녹슨 철제 구조물에서 영감을 받아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 관광객들은 화려하게 꾸며진 새 건물이 아니라, 지역의 치열했던 삶의 흔적과 예술이 결합하는 과정을 목격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정선은 이를 통해 ‘문화 예술 광산’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했다.
◇ “예술가가 주민이 되다”…日 가미야마의 교훈
일본의 산간 마을 ‘가미야마(神山)’의 실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멸 위기에 처했던 이 마을은 ‘가미야마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KAIR)’를 운영하며 예술가들을 불러들였다. 단순히 작업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지역에 머물며 주민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만들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예술가는 마을의 ‘관계 인구’가 돼 정착했고, 마을 전체가 창의적인 예술촌으로 변모했다. 이는 철도역 주변을 상업 시설로 채우기보다, 예술가가 살 수 있는 정주 여건을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지역 활성화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철길이 뚫리고 강원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것은 화려한 역사가 아니라, 그 지역에 뿌리내린 예술가의 숨결과 이야기다. 강원도가 ‘경유지’가 아닌 ‘목적지’가 되기 위해 지금 투자해야 할 것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