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발언대]따뜻한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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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석 주문진중 총동문회장

벨기에 플랑드르에 루벤스라는 유명한 화가가 살고 있었다. 당시 루벤스는 화가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외교활동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고, 국제적으로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다양한 예술을 범접하는 기회를 통해 식견을 넓힌 대가였다.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예술적 후원을 받으면서 바로크의 문화를 꽃피우는데 크게 공헌한 화가로 정평이 나 있다.

어느 날 루벤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의뢰받는 대작품을 완성했고, 그동안 누적된 피로를 풀기 위해 잠시 산책하러 나갔다. 그 사이 그의 문하에 있던 제자들은 스승의 작품을 구경하기 위해 화실로 급히 몰려갔고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뛰어 들어가며 서로 밀고 당기는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급기야 한 제자가 그만 떠밀려 넘어지면서 물감이 채 마르기도 전에 귀중한 그림을 쓰러뜨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엉망이 된 그림을 보고 모두 사색이 되었고, 스승의 땀방울이 담긴 대작을 망쳐 버린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제자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제자 중 한 사람이 붓을 들고 손상된 부분을 직접 고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스승 루벤스는 산책을 마치고 화실로 돌아왔고, 자금의 사태를 파악한 스승은 이 광경을 살펴보면서, 그는 자신의 그림을 수정하는 제자의 모습을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나고 뒤에 서 있던 스승을 발견한 그 제자는 바짝 긴장한 채 책망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긴장감이 흐르던 긴 침묵 끝에 루벤스는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내가 그린 그림을 자네가 더 훌륭하게 고쳐놓았군!” 이날 위기의 순간 칭찬을 받았던 그 제자는 훗날 영국 궁정 수석 화가로 명성을 떨친 안토니 반 다이크였다. 그 힘들고 두려웠을 때 스승의 묵직한 한 마디가 그를 그렇게 성장시키고 살려냈던 것이다.

맹자는 빛나는 스승이 아니라 따뜻한 스승이 되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유지를 내렸다. 맹자의 말처럼 학창 시절 생각나는 선생님이라고 하면 잘 가르쳤던 분보다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대해준 분이 먼저 떠오른다. 반 다이크가 명성 높은 화가가 될 수 있던 데에는 루벤스의 성원과 아낌없는 지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도 지금까지 오면서 좋은 스승을 많이 만났는데, 특히 루벤스와 같은 큰 스승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으로 기억하는데, 겨울방학 직전이었다. 나의 스승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인생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하나는 주인으로 사는 사람, 나머지 하나는 주인을 섬기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가 있는데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지는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칠판에 써 주셨다.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어떤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는(天將降大任於是人也)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의지를 지치게 하고(必先勞其心志),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苦其筋骨)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餓其體膚),

그 생활은 빈궁에 빠뜨려(窮乏其身行)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하느니라(拂亂其所不能)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참을성을 길러주며(是故, 動心忍性)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增益其所不能)”

이 시는, 맹자의 명언시로, 제자들에게 숱한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꼭 읽고 용기 내라며 가르쳐 주셨다. 40여 년도 지났지만, 스승께서 금과옥조로 주신 이 맹자의 명언, 아직도 가슴 깊은 언저리에 저장되어 있다.

우리의 삶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인생이라는 ‘고해의 바다’에서 인연으로 만난 스승을 통해 힘들게 했던 시간은 바다로 흘려보내고 좋은 경험이 켜켜이 쌓여 시간이 지나도 인생의 고비마다 우리를 떠받쳐 줄 것이다. 본격적으로 절기가 세대 교체하면서 봄의 함성이 가득하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멘토가 될 때 그 사람의 재능을 키우고 가꿔줄 줄 아는 따뜻한 스승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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