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소설 속 강원도]일본 패망·미군정…어수선한 시기 지식인의 갈등과 고뇌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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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이태준의 해방 전후

1946년 8월 ‘문학''지에 발표
작가 자신의 삶과 닮아

중편소설 ‘해방 전후’는 올해로 탄생 120주년을 맞은 철원 출신 소설가 상허 이태준(1904년~?)이 해방 직후인 1946년 8월 ‘문학’지에 발표한 작품이다. ‘제1회 해방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작품은 ‘한 작가의 수기’라는 부제와 함께 해방을 전후한 시기를 살았던 주인공에 대한 기록을 담아낸 이태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특히 소설이 발표된 해에 이태준이 월북했다는 점에서 그의 당시 상황을 가늠해 볼 수 있어 주목된다. 소설 속 주인공인 작가 ‘현’은 이태준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 투영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이태준이 1943년 절필을 선언한 후 낙향했다가 서울로 다시 돌아온 후 좌익 작가단체에 가입해 주도적으로 활동한 점 등이 소설 속 이야기와 상당 부분 닮아있기 때문이다.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 말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현은 소극적인 성품의 인물이다. 소설가인 그를 추종하는 청년들도 더러 있지만 가급적 사건들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의 머릿 속에는 아내와 함께 시골로 내려가 자농(自農)이라도 하면서 하루라도 마음 편히 살고 싶은 소망같은 것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은 살던 집을 세놓고 철원(소설 초반에서는 강원도 어느 산읍으로 표현)으로 내려간다. 낚시로 소일을 하던 현은 이곳에서 향교 직원으로 있는 ‘김 직원’이라는 노인을 만나 교류한다. 김 직원은 3·1운동 때 감옥살이로 서울에 끌려 온 이후, 총독부가 생긴 서울에 가는 것을 피할 정도로 강직한 성품과 인격을 지닌 애국자다. 현이 기인여옥(其人如玉·인품이 옥과 같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라는 표현과 함께 마을에서 존경 받아야 할 유일한 인격자라고 평가할 정도다. 소설에서 한두 번 만남으로 ‘간담(懇談·속마음)을 비추는 사이’가 됐지만 세상이 변하면서 현과는 명확히 대척점에 서게 되는 인물이다. 김 직원은 자신의 가치를 끝까지 지키려는 데 반해 현은 상황에 적응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는 모습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일문학단체인 문인보국회로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문인궐기대회에 참여하라는 전보를 받는다. 고민하던 현은 김 직원의 만류에도 “살기 위해” 참석을 선택한다. 하지만 자신이 연설을 할 차례가 다가오자 대회장을 빠져나온다. 김 노인은 전국유도대회 앞두고 머리를 깎고 국민복을 입으라는 제안을 거절하다 잡혀 들어간다. 그러던 중 현은 친구로부터 ‘급히 상경하라’는 전보를 받는다. 서울로 향하던 현은 일제의 패망과 조선의 독립 소식을 듣게 되고, 서울에 도착한 후 이번에는 좌익 문인단체인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를 찾아 발기인에 서명한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변신이다. 현은 상경한 김 직원과 만나 며칠 논쟁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군자는 불처혐의간(不處嫌疑間·의심받을 곳에 가지 않는다)이라고 한 김 직원의 말처럼 이미 벌어진 인식의 차이는 끝내 메우지 못한다. 이 소설은 해방을 전후로 한 시기, 일본이 패망하고 미군정이 들어선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식인이 겪은 갈등과 고뇌를 현실감 있게 잘 그려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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