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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기후변화와 사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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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순 수필가

사과는 인류와 가장 인연이 깊은 과일이다. 아담의 사과부터 윌리엄 텔의 사과, 뉴턴의 사과, 백설 공주의 사과, 지구의 종말이 와도 한 그루 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사과까지 사과는 과학, 예술, 철학 등에 두루 등장하는 과일의 왕이다.

2024년 한국에서는 ‘애플레이션(애플+플레이션)’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사과 한 알 값이 3,000~4,000원까지 치솟으며 다른 과일 값이 연쇄적으로 오르는 인플레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이상기온이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2023년은 지구의 평균 기온이 약 15도까지 올라 산업화 이후 가장 더웠던 한 해로 기록됐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연평균 기온이 13.7도로 평년보다 무려 1.2도나 높아 50년 만에 가장 더웠다. 평균기온이 올라가면서 4월에 피어야 할 사과 꽃이 3월에 피었다가 꽃샘추위가 닥치면서 피해를 입었다. 또한 폭염으로 인한 병충해가 겹치면서 사과 생산량이 평년보다 30% 이상 감소했다.

연평균 기온이 높아지면서 식생 변화, 종의 감소 등 다양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1970년대만 해도 사과 주산지로 경북 대구가 유명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재배지가 계속 북상하고 있다. 일교차가 큰 강원도 양구, 평창, 정선에서 더 달고 더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다. 고랭지 배추밭이 사과밭으로 바뀌었고 사과가 북상한 남쪽 지방에선 아열대 식물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바다도 예외는 아니다. 동해안의 대표적인 한류성 어종인 명태는 1980년대 이후 자취를 감췄고 대신 난류성 어종이 잡힌다. 산림 분야도 북방한계선이 올라가고 고산지역으로 수직 이동되면서 구상나무 같은 기후변화 취약 수종은 빙산의 일각처럼 고립되는 식생대가 형성되고 있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100년 전에 비해 여름은 20일 길어졌고 겨울은 22일 짧아졌다. 온실가스를 현재 수준으로 계속 배출할 경우 2100년이면 봄은 2월로 앞당겨지고 여름은 5월에 시작해 9월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그때쯤이면 사과도 도 일부에서만 재배되는 희귀한 과일이 될 것이다.

기후변화는 서서히 진행되므로 체감하기 어렵다. 국민 과일인 사과 값이 오르면서 기후변화가 생활주변에 가까이 와있고 나에게도 닥치는 현실적인 문제임을 일깨우고 있다. 사과나무가 기후변화의 바로미터가 된 셈이다. 이번엔 사과 값이 올랐지만 다음엔 또 다른 상황으로 기후변화 비용이 발생될 수 있다. 하얗고 앙증맞은 사과 꽃이 귀해 보이는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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