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청봉]소설 쓰기로 선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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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기 문화교육담당 부국장

정치인·소설가 상당히 닮아
홍보, 대중에 소구력 얻을 시
성공 가능성 한층 높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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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서사 써내려가는
인물 뽑는 선거 되길 기대

수년 전 “소설 쓰고 있네”라는 표현이 정치권에서 설왕설래된 적이 있었다. 관용적 표현으로 ‘지어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한 정치인이 “내가 소설가냐”며 불쾌하다는 듯 버럭 화를 내는 모습이 TV화면에 포착됐다. 오해를 살 수 있는 섣부른 표현에 자신의 인식 수준을 들켜버린 발끈 리액션으로 대화를 나눈 정치인 두 명의 스텝이 꼬여버리는 순간이었다. 이후 의문(?)의 1패를 당한 소설가를 사이에 두고 서로 상대방이 무시 발언을 했다는, 본질에서는 벗어난 다툼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이 장면을 보면서 재미있는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정치인과 소설가를 비교한다면 누가 더 거짓말쟁이..., 아니 전략적 사고의 인물들일까 하는 물음이 그것이다. ‘정책’이 됐건, ‘이야기’가 됐건 무언가 새롭게 꾸미고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는 둘은 상당히 닮아 있기 때문이다.

최종 목표만 놓고 본다면 정치인의 그것은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이고, 소설가는 이야기를 완성해 그 작품이 시장에서 널리 읽히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대중의 ‘인기’를 전제로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과정에서 당적과 출판사가 갖는 네임 밸류, 이름값은 대중의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시장에는 특정 브랜드를 향한 신뢰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인 개인의 스토리나 소설가가 직조해 낸 이야기의 유니크함이 더해지고, 그것을 갖고 펼치는 홍보가 대중에 소구력(訴求力)을 얻는다면 성공의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

정치세력이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자신의 세력을 대표할 후보를 낙점하고, 팀을 꾸린 후 선거운동에 돌입할 준비를 마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소설가의 경우 즉흥적인 글쓰기를 제외하면,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서 먼저 주제를 정하고 배경, 인물 설정과 함께 전체 이야기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플롯(Plot)을 구성하는 등 이른바 소설작법에 맞춘 기본 구상작업을 마쳐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작업은 마무리된다. 다음은 선거운동과 소설을 쓰는 단계다. 양쪽 모두 ‘서사(敍事)’, 즉 내러티브(Narrative)를 어떻게 구성·적용하느냐의 문제가 떠오른다. 당락은 바로 여기서 결정된다. 서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스토리(Story)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어 사람들이 빠져들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그 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감동까지 찾아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정치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다. 그래서 어떠한 사건과 등장인물 그리고 갈등과 해결책 등의 요소가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만일 셰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두 가문이 절친한 사이여서 두 남녀가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다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페스트가 퍼진 오랑시가 외부와 격리되지 않아 사람들이 모두 탈출한 상황이라면,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다르시가 소설 내용과 다르게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일이 벌어졌다면 어떨까. 단순한 일상다반사의 기록이었다면 세기의 소설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갈등 상황이 제거된, 극복의 시간이 사라진 재미없는 서사에 관심을 가질 독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마다 소설을 읽고 감명을 받는 지점은 다를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공감’과 ‘감동’이라는 요소는 항상 존재했다는 것이다. 선거 정국을 돌이켜 보면 소설 같은 공감과 감동을 주는, 드라마틱한 서사를 보여준 세력이 과연 있었나 묻고 싶다. 언제나 그랬듯 횡행하는 네거티브 서사 앞에서 피로감만 쌓일 뿐이었다. 자신에 대한, 자신의 세력에 대한 서사 하나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고 쩔쩔매는 정치인들이 감히 소설 쓰기를 얕잡아 볼 수 있겠는가. 이번 22대 총선은 아름다운 서사를 써내려 가고 있는 그런 인물을 뽑는 선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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