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 우리 곁의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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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림 사회체육부 차장

10년 전 양구 해안면의 한 농가를 인터뷰 하러 갔다가 길을 잃어 버렸다. 작은 차에 시원찮은 내비를 켜고 헤매다가 작업 중인 듯한 사과밭으로 들어갔다. 길을 물으려 했지만 사과밭에는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여성 네댓명이 웃으며 일하고 있었다. 그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비슷한 충격은 5년 전 춘천의 어느 한정식 집에서 느꼈다. 정갈한 한식 메뉴를 가져다 준 이들도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여성들이었다. 최근 단골 미용실에서는 베트남 출신 여성으로부터 머리 손질을 받았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우리 사회가 급속한 고령화로 돌봄 서비스 인력난이 심화될 것”이라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사랑하는 가족을 돌보는 일도 이제는 외국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2007년 기자 일을 시작할 무렵, 주요 출입처 중 한 곳이 ‘결혼이민자 지원센터’였다. 여성 결혼 이민자들의 가정 폭력 피해, 한국 적응 어려움 등을 돕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협력해 만든 시설이었다. 한국어와 한국 요리, 한국 문화를 배우고 비슷한 고민을 터놓던 ‘사랑방’ 같은 공간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운영 위탁을 맡았던 민간 단체도 진심으로 여성 결혼 이민자들의 한국 정착을 도왔다. 여성 결혼이민자들과 지역 여성들이 함께 김치를 담갔던 행사, 모국의 전통옷을 입고 물건을 파는 바자회 행사 등도 기억에 남는다. 여성결혼이민자들의 남편들끼리도 센터에서 모임을 가졌다. ‘공동체’는 가정 폭력, 아동학대 같은 범죄 예방은 물론이고 우울증, 고립감 등 심리적 문제도 억제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때 보고 느꼈다.

요즘 강원도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이 없으면 존립이 어렵다. 법무부에 따르면 도내 외국인은 2만 7,494명으로 10년새 57% 증가했는데 체류 자격별로 보면 근로자가 5,043명, 유학생이 4,108명, 결혼이민자는 3,258명이다. 이제는 여성결혼이민자 보다 외국인 근로자와 유학생이 3배 많아졌지만, 도내 18개 시·군의 외국인 지원 정책은 여전히 ‘여성 결혼이민자와 다문화 자녀 지원’에 멈춰서 있다. 17년 전 결혼이민자 지원센터를 출입 할 때처럼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 유학생들의 생활을 듣고 알아보고 싶은데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떠오르지 않는다. 17년 전 보다 훨씬 더 많은 외국인들이, 더 깊숙이 일상으로 들어와 함께 살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난 3년간 법조, 경찰 분야를 맡으며 도내 외국인에 대해 썼던 기사를 생각해 보았다.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의 무단 이탈 문제(2021년), 외국인 유학생들의 여중생 집단 성범죄 사건(〃), 외국인 근로자들의 마약 범죄 사건(2022년) 등이었다. 앞으로는 우리가 만든 공동체 안에서 외국인 일탈과 사회 문제를 예방했던 이야기, 한국의 수 많은 지역 중에서도 강원도를 선택한 이유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기 반성이기도 하고 건의 사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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