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호 태풍 ‘카눈’이 당초 예상과 달리 서쪽으로 경로를 바꾸며 강원 전역이 태풍의 위험지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영동지역에는 11일까지 최대 600㎜의 폭우가 쏟아질 것으로 예측되는 등 큰 피해가 우려된다. 전국이 비상이다. 무엇보다 어처구니없는 인재(人災)와 관재(官災)가 되풀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천재지변을 인간의 힘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최근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정부와 자치단체, 경찰 중 어느 한 곳에서 통행금지만 시켰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김진태 강원특별자치도지사가 지난 8일 오후 도내 18개 시·군 부단체장 영상회의를 열고 태풍 대비를 위한 선제적인 대응 태세를 갖출 것을 주문한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다. 산사태 위험지역, 급경사지, 침수 도로 등을 비롯해 빗물받이, 반지하주택, 둔치주차장, 지방하천 등의 점검을 철저히 해야 한다. 특히 장마 기간 지속된 강우로 지반이 약해졌거나 기존 산사태 피해가 있었던 주변 지역은 적은 비에도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 이젠 기후변화에 맞춰 재난 대응 능력을 키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시점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기록적인 폭염, 폭우와 같은 이상기후가 거의 매년 되풀이되다시피 하며 일상화하는 징후가 뚜렷해지는 데 있다. 2020년 장마는 역대 최장 기간 기록을 세웠다. 역대 풍속 순위 7위까지의 태풍이 모두 2000년 이후에 발생했고, 2010년대의 폭염일수도 그 이전보다 5일이나 많은 15.5일로 집계됐다. 일상화한 폭우와 폭염은 더 이상 기상이변이 아니라 기후변화로 판단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기후변화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기후변화로 폭염이나 폭우, 가뭄 등 기후 재난이 잦아지고 그 강도도 세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지구상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총량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감축은 전 세계가 동참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지구적 의제다.
우리나라가 큰돈 들여 온실가스 배출량을 완전히 줄여도 중국이나 인도에서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감축 비용은 자국 부담이지만 감축의 편익은 전 세계가 골고루 누리게 된다. 개별 국가들이 감축에 적극적일 까닭이 없다. 그렇다면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향상하는 일이 시급하다. 기후변화 적응에 실패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에게 돌아간다. 우선 안전 기준을 향후 예상되는 기후변화에 맞춰 재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번 홍수 피해를 키운 저류시설을 비롯한 방재시설의 설계 기준은 50년 빈도 확률 강수량을 적용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제 100년 만의 폭우를 경험했으니 100년 빈도로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