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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가곡 '못 잊어' 중 최고의 걸작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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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클래식 음악가 열전 ③ 작곡가 하대응

1914년 홍천 출생 일찍이 음악적 재능 나타내

서울 유학 생애 대부분 타지서 생활 낯설 수도…

강원도 출신 중 서양음악 공부한 ‘원조’

김소월 시 ‘못 잊어’ 한국 가곡사 한 획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어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김소월 시 ‘못 잊어’의 전문이다. 1925년에 발간된 소월의 첫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된 ‘못 잊어’는 훗날 여러 작곡가에 의해 아름다운 노래로 만들어진 그의 대표적 애송시(愛誦詩)다. 그런데 가곡으로 만들어진 여러 곡의 ‘못 잊어’ 가운데 가장 널리 불리며 알려진 작품이 바로 하대응 작곡가의 ‘못 잊어’다. 물론 ‘가고파’, ‘수선화’ 등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 김동진이 1960년에 이미 소월의 같은 시에 곡을 붙여 발표했기에, 1963년에 발표된 하대응의 ‘못 잊어’가 시기적으로는 뒤져 있지만, 그가 작곡한 ‘못 잊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표곡이 됐고, 한국 가곡사(歌曲史)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남게 됐다.

작곡가 하대응(사진)을 ‘강원도 클래식 음악가 열전’의 첫 인물로 선택한 까닭은 놀랍게도 그가 강원도 출신으로 또는 강원도를 연고로 했던 서양음악을 공부한 음악가들 가운데 원조(元祖)이기 때문이다. 작곡가 하대응은 1914년 강원도 홍천 출생으로, 유년기를 제외하고 생애 대부분을 타 지역에서 보낸 인물이기에 많은 이에게 다소 낯선 음악가다.

그런데 ‘낯설다’라는 사실보다 더 낯선 것은 당시 산간오지나 다름없던 곳에서 태어난 하대응이 어떤 계기로 서양음악을 접하고 음악가가 될 결심을 했느냐는 점이다.

한국 양악사(洋樂史)에서 증언하고 있듯, 그 무렵 서양음악의 주된 유입 통로는 서울과 평양이었고, 그마저도 대개 미국 선교사들이 설립한 미션스쿨이나 교회 예배를 통해 양악을 체험할 수 있는 게 대부분이었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또 한 가지 납득할 수 없는 점은 하대응 선생이 국내 양악의 원조격인 홍난파나 박태준 선생같이 미국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거나 집안 대대로 음악 가문이어서 양악에 입문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훗날 하대응 선생의 아들(하재광)이 밝힌 바에 의하면, 하대응의 아버지는 당시 홍천(어느 지역인지 불분명하지만)에서 제법 큰 규모의 농사를 짓던 부농(富農)이었다고 한다.

음악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4남매를 모두 도시로 유학 보낼 정도의 경제력이 있었고 생각이 열려 있던 하대응의 아버지였다. 그런 까닭에 비록 배움이 많지 않고 음악에 대한 지식이 없었지만 일찍이 아들 하대응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서울로 유학을 보냈던 것이다.

이영진 음악평론가

◇이영진 음악평론가

〈격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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