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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벚꽃놀이’

우리나라의 벚나무에 관한 기록은 멀리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는 765년 왕사 충담 스님이 경덕왕을 만날 때 앵통(櫻筒)에 차 끓이는 도구를 담아 가지고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앵통이란 앵두나무 통이 아니라 벚나무 껍질로 표면 장식을 한 것을 말한다(박상진,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 김영사 刊).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우리나라라고 하니 벚나무는 신라 말 훨씬 이전부터 우리 주위에 있었을 것이다. ▼구한말 사학자 문일평의 유고집 ‘호암전집’에도 이런 대목이 있다. “벚꽃이 조선에도 없는 건 아니었으나 거의 그 미(美)를 인식하지 못했으므로 봄이 오면 저절로 피었다 저절로 질 뿐, 사람에게 일찍 애상(愛賞)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지금과 같은 벚꽃놀이는 없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오히려 단단한 벚나무 재질이 유용하게 쓰였다. 그래서 조각재, 칠기, 인쇄용 목재로 많이 사용된다. 고려 팔만대장경판도 벚나무로 깎았다. 효종이 북벌 계획을 할 때 궁재(弓材)로 활용하기 위해 서울 우이동에 벚꽃을 심었다고 할 정도다. ▼50대 이상 중·장년들에게 창경원 벚꽃놀이는 잊기 힘든 추억이다. 삼삼오오 짝지어 연못에서 배를 타고 불빛 사이로 눈처럼 쏟아지는 꽃잎을 맞으며 걷던 기억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이러던 창경원 벚꽃놀이가 사라진 건 1983년 8월 ‘창경궁 복원’ 계획이 발표되면서다. ‘언제까지 일제 잔재를 남겨둘 것인가’라는 여론에 동물은 어린이대공원으로, 벚나무 1,300여 그루는 학교와 공원, 여의도 등지로 옮겨졌다. 여의도 벚꽃놀이는 여기서 비롯됐다. ▼이른 고온 현상으로 올해는 벚꽃이 평년보다 2주나 일찍 개화했다. 개나리, 진달래와 함께 핀 것이다. 당장 강릉에서는 경포벚꽃축제가 내일(31일)부터 4월5일까지 열린다. 동해나 삼척 역시 도심 전체가 연분홍빛으로 뒤덮여 있다. 꽃은 언제 봐도 새롭다. 터지는 꽃봉오리는 춘심을 일깨운다. 이번 주말 벚꽃 아래를 거닐며 소매 가득 향기를 안고 돌아온다면 이보다 큰 호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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