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봄’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이은상의 시조를 가사로 홍난파가 작곡한 가곡 ‘봄처녀’가 문득 입가를 맴돈다. 마스크를 벗고 3년 만에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맞는 봄이어서 그럴까. 내일이 입춘(4일)이다. 지구온난화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매섭던, 물러날 것 같지 않은 겨울의 기운은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봄이 꿈틀대고 있다는 것이다. ▼봄이 오는 소리는 조용하다. 들릴 듯 말 듯 한다. 눈과 얼음이 건물 위에서, 인도에서 녹고 있다. 얇아지는 사람들의 옷자락 아래 세상 모든 생명이 회춘의 희열에 들떠 있다. 꽃으로, 바람으로, 강물로 봄의 기운이 퍼지고 있다. “모든 삶의 과정은 영원하지 않다. 견딜 수 없는 슬픔, 고통, 기쁨, 영광과 오욕의 순간도 어차피 지나가게 마련이다. 모든 것이 회생하는 봄에 새삼 생명을 생각해 본다. 생명이 있는 한, 이 고달픈 질곡의 삶 속에도 희망은 있다.” 고(故) 장영희 교수가 남긴 글 ‘생명의 봄’이다. ▼입춘은 24절기 중 첫째 절기다. 예부터 이날 봄이 시작된다고 여겼다. 옛날 중국에서는 입춘 때면 동풍이 불어서 언 땅을 녹이고,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고,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조선 후기 문인 유만공은 한 해의 명절과 풍속을 집대성한 ‘세시풍요’에 담은 시 ‘입춘’에서 “저잣거리에 붙은 국태민안이라는 글자/ 어느 마을 서생이 서툴게 쓴 것인지”라고 노래했다. 봄에는 모든 게 좋아 보인다. ▼장바구니를 쳐다보며 한숨 내뱉는 주부, 수백통의 이력서를 넣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 차가운 방 안에서 이불로만 한기를 이겨내야 했던 독거노인.... 겨울 내내 봄을 기다렸을 것이다. ‘온 겨우내 검은 침묵으로/ 추위를 견디었던 나무엔 가지마다/ 초록의 눈을/ 그리고 땅속의/ 벌레들마저 눈뜨게 하옵소서....’(박희진 시인, 새봄의 기도) 고통의 시간이 물러가고 희망이 샘처럼 솟는 봄이 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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