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권시장의 경색으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을 두고 레고랜드를 희생양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레고랜드발(發) 쇼크’ 때문에 금융시장이 얼어붙었다는 것이다. ‘2,050억으로 막을 것을 50조, 100조로 막게 됐다’는 과장된 주장이 무분별하게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치적 의도까지 덧붙여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금융 권력이 정치 세력과 야합해 희생양을 만들고 언론이 이에 동조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현재 금융시장 불안은 ‘레고랜드 쇼크’에서 촉발된 것이 아니라 채무자들의 방만한 경영과 사업성 악화, 문재인 정부의 정책실패, 탈원전과 요금 통제에 따른 한전의 경영 악화에 기인한다.
레고랜드의 부도 사태의 전말은 어떤가. 채권주관사는 강원중도공사의 회생신청계획 발표를 빌미로 어음을 부도처리했으나, 이는 매우 경솔한 행동이었다. 강원도는 강원중도공사의 회생신청계획 발표 이전에 채권주관사와 만기 연장을 협의했고, 협의에 따라 4개월 이자까지 선납한 상태였다고 한다.
2012년 강원중도공사가 설립되고 10년간 수입 한 푼 없이 지출만 해왔으니 돈이 있을 리 없고, 만기에 돈을 갚을 수 없는 것은 뻔했다. 사실 회생 신청과 상관없이 채권주관사는 강원도가 보증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다만 지금 부도 처리하면 강원도가 보증채무를 이행할 때까지 더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강원중도공사의 부도 책임은 최문순 전 지사에게 있다고 할 수 있고, 김진태 책임론은 사실 왜곡이다.
새정부 출범 이전부터 한전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올해 3월 28일 2,000억원의 한전채 발행에 실패했다. 이후 금리 역전을 감수하면서 추가 단기채로 운영자금을 조달하는 등 금융시장 경색에 일조했다. 9월 금융시장 경색으로 회사채 발행이 60% 감소했고, AA- 등급 무보증 회사채 3년물 금리와 국고채 3년물 금리의 신용 스프레드는 지난해 3월 5일의 1.014%포인트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여기에 약 30조 원 규모로 발행된 한전채가 자금시장의 블랙홀로 작용했다. 금융 경색의 주범으로 레고랜드를 이야기하는 것은 규모 측면이나 시기 측면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레고랜드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 수도권에서조차 아파트 당첨자들이 계약을 포기하는 등 부동산 PF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금리 인상에 대한 제동을 걸고 정부의 지원을 이끌려는 시도도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태양권 사업과 탈원전 사업으로 한전의 적자를 야기한 문재인 정권의 책임을 레고랜드로 돌리는 것은 정치적으로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다. 최문순 전 지사가 지난 10년간 영업 수입이 없었던 회사를 흑자기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애교에 불과하다. 언론에서 금융 경색을 이야기할 때마다 레고랜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정치적 흥행은 성공한 셈이지만 금융경색 원인과는 거리가 있다. 이제 언론도 정확한 원인을 국민에게 알릴 책임이 있다. 인플레이션과 금융경색의 책임은 지난 5년간 방만한 재정지출과 돈풀기에 있다. 이로 인해 천정부지로 오른 자산 가격의 거품이 빠지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고통이 수반된다. 새정부가 한국전력 및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의 채권을 관리하는 등 채권시장 안정화에 나섰다. 부실기업들에 대한 퍼주기식이 아니라 경영정상화를 담보하는 지원이 돼야 한다. 채권과 어음시장에서 위험을 반영한 스프레드와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금리 수준으로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 강원도는 레고랜드의 경영부실과 채무보증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레고랜드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도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법적 대응을 포함한 철저한 대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