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메트로폴리탄 뉴욕]중세풍 유리램프 만들고백악관 인테리어 도맡아명품 주얼리 ‘티파니’ 뜻밖의 도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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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플의 어제와 오늘-(7)모든 여성의 로망 티파니 앤 코(Tiffany & Co) (2)

티파니 맨션의 로지아(loggia: 측면이 정원과 연결되도록 개방된 거실) 일부(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미국관(American Wing) 전시)

19세기·20세기 초 유리공예를 현대 비즈니스에 적용 성공가도

데코레이션 회사 차려 뉴욕 상류층 건물 인테리어 전담하기도

생활필수품으로 영역 확장 ‘티파니램프'' 대중에 폭발적인 인기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유리창문·모자이크 제품 전시돼

20세기 뉴욕 문화 ‘유럽 따라가기'' 넘어 ‘극복하기'' 단면 그대로

뉴욕의 핫플을 소개하면서 ‘티파니 앤 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지면이 길어져 2부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사실 뉴욕의 핫플 중 하나를 특정 회사로 정해 길게 이야기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이 오래된 주얼리 회사의 역사적 부침을 살펴보는 것이 미국인들이 창조해낸 뉴욕이라는 거대도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꽤 큰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싶어 주요 핫플로, 그것도 1, 2부로 나눠 길게 다루게 됐다. 20세기 뉴욕의 여러 특징 가운데 ‘유럽 따라가기''가 있다. 짧은 역사 속에서도 세계 최고 부강을 이뤄낸 미국인들이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유럽문화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한 노력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예를 들어 2차 대전 후 유럽의 이민예술가들을 적극 받아들여 현대미술에서만큼은 미국이 유럽을 앞지르는 쾌거를 이뤄낸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티파니도 비슷한 시도를 했는데, 유럽의 오랜 예술적 전통양식(유리세공)을 모방해 대중화시키려 한 노력이 한때 사운을 걸 만큼 중요한 사업이었고, 이런 시도 자체가 전통적 유럽을 극복하려 한 뉴욕 문화의 한 단면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럼 지금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 티파니의 과감했던 도전의 역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티파니 스튜디오에서 판매했던 수련 잎(lily pad) 램프(좌), 파인애플 램프(우) 자료: New York City, Yesterday & Today(1990)

티파니는 창업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가 사망한 1902년 그의 아들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Louis Comfort Tiffany, 당시 54세)가 회사를 이어받으면서 엄청난 대전환기를 맞게 된다. 재미있는 건 당시 티파니가 주력했던 사업이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질 만큼 색다른, ‘티파니가 그런 사업을 했다고?''라고 누구나 의아해할 만한 사업이었다는 점이다. 루이스 티파니는 일찍이 예술가의 길로 뛰어든다. 이미 거대한 부를 이룬 부친(창업자 찰스 티파니)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학 졸업 후 유럽에서 화가의 길을 걷는다. 그러던 중 중세시대 유럽에서 꽃을 피웠던 납땜 유리제품(Leaded glass)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이처럼 아름다운 유리공예를 현대 비즈니스에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꿈을 갖게 된다. 곧 중세기법에서 착안한 독창적인 유리공예술을 개발해 형형색색 다양하면서도 품격 있는 유리제품들을 만들게 되는데, 이들 제품을 수많은 교회에 납품하면서 예술가이자 사업가로서의 성공 가도에 오르게 된다. 1879년에는 아예 데코레이션 회사를 차려 뉴욕의 상류층과 백악관 건물의 인테리어도 전담하게 되는데, 1902년에는 회사를 더 키워 ‘티파니 스튜디오''(Tiffany Studios)라 이름 짓고 유리제품뿐 아니라 가구, 그림, 카펫 등 거의 모든 데코레이션을 상류층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 공급함으로써 획기적인 매출을 올리게 된다.

1923년에 제작된 티파니의 유리제품 ‘가을풍경(Autumn Landscape)’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미국관(American Wing) 전시)

그의 성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부친의 피를 이어받아서인지 예술가보단 사업가로서의 기질이 뛰어났던 루이스 티파니는 그가 개발한 유리공예술을 발전시켜 분유리제품(Blown glass) 제작에 뛰어든다. 분유리는 유리를 녹여 이어 붙이는 기법으로 각양각색의 유리제품을 만들 수 있는데, 그는 예술성과 상업성이 결합된 유리제품을 대량 생산해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된다. 대표적인 제품이 분유리 전등이다. 마침 에디슨의 백열전구 발명으로 집집마다 전등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티파니는 유리 조각을 이어 붙여 다양한 형태의 램프를 만들 수 있는 분유리 전등을 직접 디자인해 판매한다.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맞춤식으로 제작, 판매하는 현대식 마케팅 전략까지 구사하면서 티파니가 만드는 이 예술적이면서도 생활필수품 성격을 지녔던 ‘티파니 램프''는 폭발적인 인기와 매출을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았던 루이스 티파니의 성공은 여기까지였다. 20세기 들어 점차 중세풍의 복잡하고 다채로운 양식보다는 단조로우면서 추상적인 현대풍의 깔끔한 양식이 선호되면서 조금은 복잡하고 과한 듯한 티파니 램프에 대한 대중의 열기는 점차 식어 갔다. 과도한 사업 확장이 분유리제품 사업의 수익성을 급격히 악화시키면서 1932년 마침내 티파니 스튜디오는 파산한다. 이듬해 1933년 85세의 나이로 루이스 티파니도 눈을 감는데, 티파니는 마지막에 그가 살았던 맨션인 뉴욕 롱 아일랜드의 로렐톤 홀(Laurelton Hall)에 돌아와서 운명했다고 한다. 그의 사망 당시엔 그가 이뤘던 부의 대부분을 잃어 남은 재산이 별로 없었고, 그가 그토록 사활을 걸었던 유리가공품 사업도 쇠락해 이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의 사망 후 로렐톤 홀은 예술가들의 모임 장소로 이따금씩 사용되다가 1948년 마침내 경매로 넘어가는데, 그로부터 9년 후 화재가 나 사흘 동안 불에 탔다고 한다. 20세기 초 한때를 풍미했던 전설적 주얼리 회사의 유일한 상속자가 이룬 흥망의 마지막치고는 꽤 씁쓸하다. 하지만 지금 티파니의 대성공을 그가 다시 보게 된다면 어떨까? 그가 죽던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그가 피운 미래의 어떤 불씨 같은 것이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지금 티파니가 20세기 초반에 유리공예, 유리제품 사업으로 크게 번성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 유물은 뚜렷이 남아 있는데, 지금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미국관(American Wing)에는 20세기 초 번성했던 티파니의 다양한 유리공예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그 동선을 잠깐 살펴보자(전시 조정 등으로 달라졌을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먼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미국관을 들어서면 내부 정원에 1923년 티파니 스튜디오가 제작한 납땜 유리창문 ‘가을풍경(Autumn Landscape)''이 보인다. 가을 낙엽으로 채색된 조용한 호수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 주변엔 티파니 스튜디오의 1905년 대형 유리 모자이크 제품, ‘연못정경(Landscape Fountain)''이 있다. 수련과 백조가 떠 있는 연못을 매우 로맨틱하게 묘사한 제품인데, 1938년 어느 경매를 통해 팔렸다가 40년이 지난 후에야 어느 이름 모를 창고에서 상자째 발견됐다고 한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작품은 루이스 티파니가 살았던 맨션(Laurelton Hall)이 불에 탈 때 타지 않고 끝까지 보존됐다고 하는 로렐톤 홀 입구(1905년)다. 마치 고대 이집트 건물을 떠올리게 하는 매우 이국적 양식의 이 건축물은 고대풍 석조건물과 티파니 고유의 모자이크 유리창, 유리 램프가 어우러져 매우 독특한 느낌을 준다.

뮤지엄의 미국관을 빠져나오다 보면 중세조각관(Medieval Sculpture Hall)을 지나게 된다. 13~14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납땜 유리창 등 다수의 유리공예품을 볼 수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티파니가 추구했던 최고의 사업, 유리공예제품의 원형인 이 중세 제품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느낌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티파니의 유리공예 사업은 실패했지만, 예술과 비즈니스를 접목시키려 했던 루이스 티파니의 장인정신은 그대로 남아 지금의 티파니를 이룬 것이라고. 단순한 비즈니스를 넘어 수많은 예술적 시도를 거친 티파니의 오랜 도전과 흥망이 있었기에 지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티파니만의 고유한 매력이 유지되는 것이라고, 이 전설적 주얼리 회사의 독특한 역사를 통해 유추해 본다.

최재용 한국은행 강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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