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황지어사전'과 ‘쎄요' 비누

이종덕 문화플랫폼 봄아 대표

길이 선생이었다. 캐나다 퀘벡을 연상케 하는 이국적 풍경의 38번 국도를 사람들의 자서전을 채록하러 몇 해를 넘나들다가 신기한 경험을 했다. 지명에 없는 ‘황춘옥다리'를 만난 것이다. 태백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다리. 그래서 엉뚱한 실험을 해 봤다. 택시를 타고 황춘옥다리에 가자고 했더니 군말 없이 산소도서관 뒤의 딱 그 다리에 세워주는 거다. 광산의 불꽃이 넘실대던 시절부터 관념 속에 남아 있는 다리. 그래서 지역을 기록하고 남기는 일이 귀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라는 황지 물길 복원 현장을 타박타박 걸으며, 옛 물길에서 그 시절 나룻배를 띄웠으면, 그리고 이런 기억을 담뿍 건져 올리는 스토리로드로 재탄생했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해봤다.

마침 태백시와 도시재생센터가 인문학당을 통해 도시의 이야기 두레박을 건져 올리는 중이다. 스토리를 건져 올리는 일에 인문학공동체 ‘인향만리'가 본격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기실 ‘인향만리'는 강원문화재단 지원으로 구문소 마을에서 ‘꿈다락 시시한 농부학교'를 운영 중이다. 그들과 지역민의 노력으로 물길과 사람 길이 물안개처럼 향기롭게 피어올랐으면 좋겠다. 마침 태백교육지원청에서 지역 교과서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 지역 토종 날것의 이야기들을 학창 시절부터 배워보면 어떨까? 태백의 실험이 자못 흥미롭다.

며칠 전에 강릉에서는 단오 기념으로 강릉사투리 비누가 출시됐다. 일명 쎄요 비누. 조순 전 서울시장 때문에 유명해진 바로 ‘낱 쎄요, 마커 쎄요, 상구도 쎄요'가 그것이다. 강원일보 사투리대회 기념품이라는 콘텐츠로 새로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강릉 중앙동도시재생센터에서는 ‘마을해설사'와 ‘마을축제기획자'를 양성 중이다. 그들은 화려했던 서부시대를, 용강동의 옛 석빙고를, 미진라사를, 사라져가는 오래된 가게와 추억의 집들을 찾아내는 중이다. 아마도 가을이면 주민 손으로 빚은 문화기획과 마을 축제가 익을 터이다.

그런 추억의 길들을 잇는 도심 속 힐링로드 ‘강릉모탱이길'을 만들어 연결하는 작업을 가톨릭관동대 링크사업단과 함께하고 있다. 바우길과 연계해 도심 속 걷는 길로 이어져 ‘도시 깊이 들여다보기'로 확장되어 가는 중이다.

춘천에서는 은행잎이 곱게 물드는 10월, 한국지역도서전을 개최한다. 지역을 노래하고, 기록하는 사람과 책들의 잔치다. 오래된 사진, 오래된 잡지, 오래된 작가, 오래된 책들이 이번 가을에 춘천에서 햇살을 쬐일 예정이다.

즉, 지명이 만들어진 연유와 우리가 열심히 과거 새마을로 만들었던 초가집 없애고 물길 파묻었던 그 길을 다시 물이 흐르게 만들어 주고, 사람이 걷게 만들어주는 거리를 우리 손으로 만들기 위한 이정표로서 마을 교과서와 지역어 사전이 필요하다. 어려운 전문서적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쉽게 읽고 써먹을 이야기들. 지역의 속속들이 숨겨진 가치, 그것이 각 마을마다 나침반처럼 주어진다면 우리는 어디에 샛강이 흘렀고, 어느 곳에 풀미당골과 백석지, 불당골이 있었는지 찾아내 거기에 맞는 이름표를 달아줌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복원작업을 이뤄낼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기록되는 것만이 기억된다'는 언명처럼 이 시대를 사는 분 모두 산책자이자 기록자가 돼 오래도록 두고두고 향기롭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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