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봄날은 간다

'봄'은 순우리말이다. 어원은 분분하다. 우선 '불(火)'에 근원이 있다는 설이다. 불의 옛말 '블'과 오다(來)의 명사형 '옴'이 합해진 '블+옴'에서 'ㄹ' 받침이 떨어져 나가고 '봄'이 됐다는 것이다. 따뜻한 불의 온기가 다가옴을 일컫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말 봄은 보다(見)라는 동사의 명사형 '봄'에서 온 말이라는 설명이 더 근거 있는 어원이라고 여겨진다. 산천초목의 잎과 꽃이 피어나는 화사한 날, 볼만한 것이 많기 때문이리라.

▼완연한 봄인가 싶더니 갑자기 찬 기운이 살갗을 파고든다. 꽃샘추위다. 옛사람들은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여 아양을 부린다고 해 '화투연(花妬娟)'이라고 불렀다. 봄은 바람에 실려 온다. 바람이 유난히 드세다. 이는 '잎샘바람'이라 했다. 잎이 트는 것을 시기하는 기상현상이다. 그렇게 봄 날씨는 고르지 않다. '인생의 봄'이라 해서 청춘(靑春)이라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저, 쌤앤파커스 간)'라는 말도 자연현상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

▼생물은 계절의 순환을 타고 명멸(明滅)한다. '불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변한다는 사실뿐”이라고 했다. 백설희, 조용필, 장사익, 한영애 …. 당대 가객들의 절창 '봄날은 간다'가 기억에 새롭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4·11 총선, 정치판의 춘투(春鬪) 구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변화무쌍한 계절에 저마다 민심을 얻어 '정치의 꽃'을 피우겠다는 야심이다. 법정 스님의 생애 마지막 법문, 그 갈무리 구절이 귓가에 맴돈다. “봄날은 갑니다. 덧없이 지나가요. 제가 이 자리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새로 돋아나는 꽃과 잎들이 전하는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듣기 바랍니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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