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보아도 보이는 건 하나 가득 슬픔뿐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 돌아앉아 있다. 그리 답답한 세상이니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는 욕구가 어찌 솟구치지 않았겠는가. 그러니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라고 목청을 높였다.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잊히지만 그래도 예쁜 고래 한 마리가 생각나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동해 바다로 떠나자고. 197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이 된 노래 '고래사냥'이다.
▼ 고래는 46억 년 지구 역사상 최대의 동물이다. 서양인들은 바다의 괴물이란 뜻으로 '케토스(Ketos)'라 일컬었다. 우리네 옛 사람들은 큰 고기라는 뜻으로 '경어(鯨魚)', 그냥 '경(鯨)'이라 칭하기도 했다. 고래사냥 이야기인 허먼 멜빌의 소설 표제 '모비딕(Moby Dick)'은 '백경(白鯨)'으로 번역 소개됐다. 순우리말 '고래'는 19세기 초 조선의 실학자 서유구의 저서 '난호어목지(湖漁牧志)'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 고래잡이에 혈안이 된 것은 17세기부터다. 살코기도 그렇거니와 우선은 기름을 얻기 위해서다. 고래기름으로 등불을 밝혔고, 기계를 돌리는 윤활유로 사용했다. 고래의 수염을 비롯한 각종 부산물은 화장품 의약품 공예품 등 500여 가지 공산품의 원자재로 활용됐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고래잡이에 나서 개체 수가 급감해 1986년 세계 포경(捕鯨)금지 조치가 나왔다.
▼ 서양인이 동해에서 '독도'를 처음 본 것도 고래에 관계한다. 프랑스 리옹3대학에서 한국학을 지도하는 이진명 교수가 서양문헌을 속속 뒤져 독도가 우리 땅임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 '독도, 지리상의 재발견(삼인 간)'에 의하면 프랑스 고래잡이배 리앙쿠르호 선원들이었다. 남획으로 동해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고래가 최근 강릉과 삼척 앞바다에 연이어 나타났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일이 많은 세상이지만 희망도 있는가 보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