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원포럼]가장 순수한 땀을 흘리는 사람들

이강후 대한석탄공사 사장

지난 8월5일 붕괴된 칠레 북부 한 광산 지하 700m에 갇혀 거의 두 달째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33명의 광부들을 떠올리며 이들이 무사히 사랑하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길 빌어본다. 그리고 그 순간 석탄공사 사장으로서 이보다 더 깊은 지하 1,075m에서 일하는 우리 직원들의 모습이 떠올라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난 9월3일 오전 8시20분, 강원도 태백 장성광업소의 금천생산부에서 작업지시를 받고 8명의 직원들과 1조가 되어 석탄을 캐기 위해 갱구로 내려갔다. 필자가 35대 석공 사장이지만 전임 사장들은 막장까지 가보았을 뿐 직접 채탄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직원들의 위험과 힘든 작업실정을 알기 위해서 채탄을 하기로 작정하였다. 직원들은 위험하고 힘들다고 만류하였지만 작업을 직접 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이미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터라 내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광산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900m 입구까지 내려갔다. 이곳 장성광업소에는 2개의 수직갱이 있는데 그중 제2수갱은 초당 13.5m 속도로 석탄을 끌어올리는 시설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다는 63빌딩 엘리베이터의 초당 9m를 능가하는 속도이다. 다시 좁은 철제 계단을 내려가 수직으로 지하 975m, 거리로는 3,000m가 넘는 채탄작업장에 도착했다. 그저 이동만 하였는데도 이미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눈가의 까만색 땀이 눈에 들어가 연신 닦아내야만 했다. 가장 힘든 건 30도에 가까운 높은 온도와 습도 그리고 분진이었다. 분진을 마시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썼는데 숨이 턱턱 막혔다. 어떤 표현이 이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떠오르지 않는다.

가로 3.9m 세로 2.6m 철제 빔으로 지탱하고 있는 곳이 광산 근로자들이 하룻동안 일하는 작업장이다. 세 명이 나란히 서있기도 좁은 이곳에서 직원들은 능숙하게 작업을 하기 시작하였다. 탄을 운반할 컨베이어 벨트를 연장하고 화약을 넣어 발파한 후 무거운 철제 빔을 연결하여 작업장을 연장해 나갔다.

자재운반과 유탄작업(발파되어 붕괴된 석탄을 컨베이어 벨트에 싣는 작업)이 오늘 해야 할 일이었다. 좁은 곳에서 일을 하니 허리도 아파 오고 온몸이 쑤시기 시작하였다. 인근 작업장에서도 연신 화약 발파 소리가 들려왔고 그럴 때마다 천장이 크게 울리고 귀가 아팠다. 그러나 마음은 기뻤다. 우리 직원들이 너무도 고마웠다. 이들이 흘리는 땀은 가장 순수하고 정직한 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석탄 1톤을 캐면 연탄 277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오늘 캔 석탄이 서민들의 추운 겨울나기에 보탬이 될 따뜻한 연료가 될 수 있다니 위로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한 장의 연탄을 만들기 위해 이처럼 많은 직원의 땀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문해 보았다.

우리나라는 과거 석탄을 주요 에너지로 산업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국제 유가가 내려감에 따라 석탄의 경쟁력이 떨어졌다. 이에 따라 1989년부터 경쟁력이 없는 탄광을 정리하는 석탄산업합리화 조치를 실시하면서 당시 347개에 달하던 탄광이 현재는 5개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석탄은 우리 서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연료이고 우리나라 부존 유일한 에너지 자원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향후 통일시대에는 북한지역의 풍부한 석탄은 더욱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부상할 것이다.

오후에는 지하 1,075m 고온의 굴진 작업장을 점검하기 위해 100m 더 밑으로 내려갔다. 말이 지하 1,000m이지 정말 인간으로서 일할 수 있는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우리 직원들의 환한 웃음을 지켜주는 것이 바로 사장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혹자는 “인류사회가 시작한 이래 가장 험한 일 중 하나가 '광산 근로자'라는 직업이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험하고 힘들지만 가장 순수한 땀을 흘리는 직업이다”라고 말이다. 그 땀의 의미를 이 글을 읽는 순간 만이라도 동감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이강후 대한석탄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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