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집가의 초대’전이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강원일보가 보도(9월 11일)했다. ‘이건희 컬렉션’인 특별전은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김홍도가 그린 ‘추성부도’ 등 국보와 보물 24점을 비롯한 283점의 문화유산을 만나볼 수 있다고 소개한다. 강원도 반닫이와 목가구 1점, 도자기 27점 등 30점의 기증품은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공개된다고 한다.
금요일 오전에 박물관을 찾았다. 평일임에도 관람객이 붐빈다. 소나무로 두껍고 크게 만든 ‘강원도 반닫이’가 투박하게 맞이한다. 여덟 곳 전시 공간마다 걸려있는 ‘이야기 명패’는 전시물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책 선반에 진열된 물건들을 그린 ‘책가도’가 보이고, 국보인 ‘백자 청화 대나무무늬 각병’도 눈길을 끈다. ‘인왕제색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도록 별도의 공간도 마련되었다.
한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청령포후면비각도’라는 제목의 그림 앞이었다. 해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단종이 유배되었다가 죽음을 맞이한 영월 청령포를 그린 그림이었다. 영조 임금이 쓴 ‘단종께서 영월에 계실 때의 옛터’라는 문구를 새긴 비석을 중심에 두었으며, ‘사군영월산수도첩’이란 화첩에 수록되었다. 충청의 청풍부, 단양군, 제천군, 영춘현의 명승지와 영월의 유적지 그림 36점을 담은 화첩이다.
찬찬히 살펴보았다. 비각 주위를 둘러싼 소나무는 사육신과 생육신의 절개인 양 곧다. 단종은 소나무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단종의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해서 관(觀)자를,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 하여 음(音)자를 붙인 관음송이 되었다. 당시는 단종이 머물던 건물이 복원되지 않은 상태였다. 뒤편으로 높이 솟은 봉우리는 노산대이다. 그곳에서 한양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비운의 장소를 찾는 이가 많았던 것 같다. 그림 속 배를 탄 이가 여섯이고, 강 건너편에 아홉 사람이 이동한다. 한참 그림을 보다가 화첩 속 나머지 작품이 궁금해졌다. 영월의 유적지를 그렸다는데 어디를 그렸을까?
박물관에 문의하니 나머지 작품을 알려준다. 영월 관아에 딸린 누각인 ‘자규루’가 화첩의 한 곳을 차지했다. 자규루는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을 때 자주 올랐던 누각이다. 자규루에 올라가 시를 지으며 눈물지었다. 단종의 능인 장릉을 보호하던 ‘보덕사’도 선명하다. 화면 왼쪽에 조그마한 건물은 지금도 남아 있는 해우소이다. 절을 찾은 손님과 접대하는 스님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영월에서 제천으로 가다가 넘어야 하는 검각령은 안개가 유명하였다. ‘검각령대무’란 제목 아래 안개에 뒤덮인 고개를 무릉도원처럼 표현하였다. 주천의 명소는 ‘청허루’다. 지금은 전해지지 않지만, 김홍도의 그림을 보고 홍석주가 지은 한시가 전해질 정도였다. ‘사군영월산수도첩’에 청허루가 포함된 것은 당연하다. 청허루 옆에 누런 황소가 있고, 주천강에 떠 있는 배를 탄 선비는 뱃놀이 중이다.
강원도를 주제로 한 그림은 금강산이거나 길목인 철원, 김화의 명소를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관동팔경을 중심으로 한 영동지방 그림도 많다. 화천 사창리에 있는 곡운구곡을 그린 작품도 대표적인 강원도 그림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우리의 눈길을 기다린다. 어느 수집가가 초대하였는데 청령포에 초대한 셈이 되었고, 덕분에 영월 지역의 그림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처럼, 강원도 그림이 수장고에서 나와 초대하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