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와 초동 사이의 지난 주말 허한 마음을 채울 것을 찾다가 작은 방 책장 맨 아래에 놓여 있던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발견했다. 학창시절 읽었던 느낌을 떠올려보다가 재독을 하면 그 느낌이 달라질까하는 궁금함에 기어코 책을 꺼냈다. 첫 장을 편 순간부터 쉬지 않고 마지막까지 내달렸다. 오만과 편견은 재판이 가장 경계할 태도다.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의 소송법은 ‘증거재판주의’라는 규범을 앞세워 재판에서 오만과 편견을 배격한다고 선언한다. 진실이 그 무엇이고, 현실과 관행이 어떠할지라도, 해는 동쪽에서 뜬다와 같은 공리를 제외하고는 법관이 증거재판주의라는 규범을 외면하고, 독자적인 상식과 내재적인 논리만으로 일방 당사자에게 유리한 사실관계를 인정하거나 증거만으로는 알 수 없는 그럴 듯한 내용으로 사실을 인정하여 판결서를 작성할 수 없다.
우리 소송규범은 재판을 통해서 수집된 부족한 증거들만으로 겨우 인정할 수 있는 미완의 사실이 완벽한 진실, 현실, 관행과 부합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감내하고 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한정된 증거에 대한 분석의 한계로 인하여 진실과 일부 부합하지 않는 판결이 선고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 소송규범은 진실에 부합할지라도 오만과 편견으로 점철된 판결보다 오만과 편견이 최대한 배제된 상태에서의 재판의 결과로 현실과 진실에 부합하지 않은 판결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이렇듯 현실은 법정에 입장하면서 규범의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온 것이며, 현실의 힘은 규범 앞에서 어느 정도 양보된다. 당사자들은 ‘재판이 진실과 현실, 관행을 도외시하였다’라고 비판을 하기도 한다. 현실이 황새걸음처럼 빠르게 변하고, 그 양상도 다양해지고 있는데, 판결이 이를 반영하지 못해 동떨어진 결론을 내놓았다는 지적이다. 물론 현실과 진실, 관행을 증명하는 충분한 증거들이 법정에 제출되었음에도, 법관이 이를 충분히 분석하지 않고 파악하지 못 하였다면, 받아 마땅한 비판이다. 규범과 현실의 줄다리기에서 증거가 충분하게 제출되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합리적이고도 타당한 설명이 변론에서 이루어졌다면, 규범은 현실을 응당 납득하여야 한다.
그러나 실제 사건들의 면면을 떠올려보면, 그러한 사건들보다는 사회경제 양상이 바뀐들 규범이 현실에 양보할 수 없는 영역에서의 사태를 둘러싼 사건이 주를 이룬다. 아니 더욱 증가하고 있다. 예컨대, 모든 법률가들이 ‘금액이 큰 거래에서는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합시다. 누가 보더라도 계약서 내용은 분명하고도 한눈에 이해될 수 있도록 작성합시다.’라고 한목소리로 호소하고 있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인 듯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 이루어진 보증금을 둘러싼 분쟁, 매매계약에서의 해제 분쟁 등 전형적인 계약 분쟁은 계약서의 부재, 불충분로 인하여 사건이 발생하며, 이러한 사건은 규범이 도저히 현실에 자리를 내어줄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사건의 분쟁 원인이 과거보다 현재 특별히 더 진화하였거나 분쟁 현실이 더 복잡해졌다고 할 수 없다. 즉,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사건은 ‘현실을 도외시한 규범’으로 인하여 초래되었다기보다 아이러니 하게 ‘규범과 원칙을 간과한 현실’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런 사건에서 법관은 증거 부족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법관이 온전하다고 자신할 수 없는 상식과 예측, 선험적 논리를 동원하여 ‘있을 법한 사실’, ‘현실과 관행’, ‘진실’을 재판상 사실로서 멋대로 인정할 수 없다. 증거가 있는 그대로의 재판과 판결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