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추 한포기 가격이 1만원을 넘어섰다. 수도권 등에서는 2만원을 웃도는 '금배추'가 판매되며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를 끌어 올리는 주범이 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24일 춘천지역 기준 배추 1포기 가격은 1만100원으로 지난해 6,193원보다 63.1%나 뛰었다. 올해 배추가 귀한몸이 된 이유는 지난 여름 유례없는 폭염과 가뭄 등 이상기후로 인해 강원지역 고랭지 배추 수확량이 감소하고 전국적으로 줄어든 배추 재배면적과 추석 연휴의 폭우로 전국 배추 재배지가 침수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포장김치를 찾는 소비자가 늘며 온라인 쇼핑몰과 마트에서는 '품절' 사태도 빚어지고 있다. 식당 밑반찬에서 김치가 사라지고 배추를 구하지 못한 김치공장이 가동을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온다. 최근 도내 고랭지 지역을 중심으로 출하량이 늘어나며 상승폭이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김장철을 앞둔 소비자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지난 7, 8월 원활한 배추수급을 위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장·차관 등이 잇따라 강릉 안반데기 등 도내 고랭지배추 재배지를 찾아 작황을 점검하고 농업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농업인들은 정부가 고온과 가뭄 등 배추 수확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정개발비 지원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원은 미루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 결과가 지금의 배추대란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장바구니 물가를 끌어 올린 것은 배추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작황 부진으로 수확량이 급감한 사과와 배가 대표적 사례다. 추석 직전에는 시금치가, 그리고 올 봄에는 대파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총선 이슈가 되기도 했다.
정부는 사과 배 등 국산 과일 가격이 오를 때마다 수입산 과일을 대체제로 소비하도록 유도해 국내 과일가격 하락을 유도했다. 사과 배 가격이 치솟던 지난 1월 바나나와 망고 등 21종의 과일을 시작으로 4월에는 키위와 체리 등 모두 29종에 대한 관세를 낮춰 주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과일 수입량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일단 수입 과일로 사과·배 가격의 급등세는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대목이 빠졌다. 수확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농업인에 대한 대책이다. 수확량이 줄어 든 과일 재배 농가가 값싼 수입과일로 인해 제값을 받지 못하며 경영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에도 배추가격 안정화를 위해 중국산 배추를 수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배춧값을 잡는다는 이유로 각종 농약성분 등이 검증되지 않은 중국산 배추를 시장에 풀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조치에 대해 전문가들은 '언발에 오줌누기'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뒷전으로 미루고 임시변통에 급급해 하기 때문이다. 중국산 배추가 들어오면 당장 급등한 배춧값을 잡을 수는 있겠지만 본격적인 출하를 앞둔 고랭지 배추 재배 농가들이 받을 타격은 또 어떻게 감당할지 의문이다. 지난해에도 김장철을 앞둔 시기에는 배춧값이 들썩였고 정부는 중국산 배추를 들여왔다. 그 결과 도내에서 출하된 고랭지 배추 가격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더 큰 문제는 기상이변 여파로 인한 농산물 가격의 널뛰기가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식량이 무기화 될 수 있다"는 막연했던 예측이 눈앞의 현실이 되며 세계 각국은 이미 농업 위기를 식량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농산물 수급 차질을 긴급 수입이나 할당관세 적용 등 임시방편으로 일관하기에는 우리 농업이 직면한 위기가 너무 엄중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언발에 오줌누기'식의 처방이 아닌 지속 가능한 국내 농산물 생산 및 수급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