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기후위기 해법을 제시한다]10명 중 8명 차 없는 ‘보봉마을’

②에코토피아를 실현하는 방법, 독일 프라이부르크 보봉마을(Vauban village)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친환경 정신을 집약해놓은 보봉마을. 사진은 마을회관과 장터가 열린 모습. 독일 프라이부르크=신세희기자

프라이부르크 시내에서 3㎞ 남짓 떨어진 보봉(Vauban) 마을은 독일의 친환경 도시계획을 집약한 지역이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연합군의 주둔지였던 이곳은 1992년 프랑스군이 철수하면서 저소득층과 대학생들의 주거지가 됐다. 자칫 빈민가로 전락할 뻔했던 마을은 주민 연대를 통해 친환경·탄소중립을 지향하며 세계적인 친환경 마을로 탈바꿈했다. 에너지자립을 이뤄내며 생태적 이상향 ‘에코토피아’로 자리매김한 인구 5,000여 명의 작은 마을, ‘보봉’을 소개한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

프라이부르크 시내에서 트램을 타고 10여 분을 달리면 각양각색의 주택이 빼곡히 들어선 보봉마을에 도착한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집마다 설치된 태양광 패널과 건물 외벽을 뒤덮은 담쟁이덩굴이다. 보봉마을의 모든 건축물은 첨단 단열공법을 이용해 에너지의 낭비를 최소화하는 ‘패시브하우스’를 지향한다. 난방 효율을 높이기 위해 주택과 주택 사이를 붙여 지은 보봉마을 주택단지. 이곳 주민들은 지붕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해 필요한 전력을 직접 생산해 사용하며, 마당 가득 식물을 심어 건물의 온도를 낮춘다. 또 주택의 열 손실을 막기 위해 3중 이상의 창호와 단열재로 단열효과를 극대화한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친환경 정신을 집약해놓은 보봉마을. 사진은 주택가 내에 보행자우선도로(교통절제구간) 표시. 독일 프라이부르크=신세희기자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친환경 정신을 집약해놓은 보봉마을. 사진 오른편엔 트램 노선이 지나고 있다. 주거지와 트램 정거장이 가까워 시내와 접근성이 좋다. 하지만 취재진이 방문했을 당시엔 트램 노선이 공사중이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신세희기자

■주민 10명 중 8명은 ‘차 없는 마을’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보봉마을 주민들은 기꺼이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 삶을 택했다. 집집마다 주차장을 짓는 대신 마을 외곽에 공용 주차장을 설치했다. 차를 가진 주민들은 주차장에 차를 두고 집까지 걸어와야 하며, 마을 내에서 자동차는 시속 30km 이하로만 운행할 수 있다. 주민들의 오랜 협의의 결과 보봉마을 주민들의 자가용 소유비율은 20% 미만으로 거리에서는 자동차를 찾아보기 힘들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전거를 이용하며, 마을 밖으로 나갈 때에는 마을 중심에 위치한 트램 정류소를 찾는다. 차가 필요한 경우에는 마을 곳곳에 세워진 공유 자동차(카쉐어링)를 이용한다.

■주민네트워크로 완성되는 ‘에코토피아’

보봉마을은 주민들의 합의로 공동의 원칙을 설정한다. 주민들이 마을 광장에 모여 벼룩시장을 열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보봉마을의 모습은 공동체의 가치가 날로 약해지는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이곳 주민들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이유는 마을의 시작점이 주민자치이기 때문이다. 보봉마을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치조직 ‘포럼 보봉’이 친환경마을 건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주민자치로 완성된 마을은 환경·복지·교육 등 삶에 전 분야에 걸쳐 주민들의 논의를 이어간다. 치매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는 물론 탈 주택을 추구하는 이들까지, 보봉에서는 모두 동등하게 녹색 미래를 그린다.

보봉마을 내 친환경 호텔인 그린시티호텔. 독일 프라이부르크=신세희기자
보봉마을의 랜드마크인 '태양의 배'. 태양열 에너지로 전력과 난방을 해결하고 벽면에 들어있는 파라핀 왁스 단열재로 전력 소모 없이 냉방을 가능케 한다. 태양열에 의해 녹은 파라핀은 실내온도를 25도 이상 높이지 않는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신세희기자

■관광객도 동참하는 ‘보봉 정신’

보봉마을을 찾는 모든 이들은 도시의 친환경 정책에 동참하게 된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그린시티호텔’에는 보봉의 친환경 정책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전 세계인의 발길이 모인다. 호텔은 태양광 패널에서 모은 전기로 건물 전체 에너지 사용량을 충당한다. 호텔 외벽을 무성하게 덮은 덩굴식물은 여름에는 건물의 온도를 낮추고 겨울에는 더 오래 햇빛을 머금어 열을 보존한다. 지역에서 난 식재료로 조식을 만들고, 일체의 일회용품을 제공하지 않는 호텔은 투숙객들로 하여금 보봉마을의 친환경 정신을 체험하게 한다.

슈테픈 리스(Steffen Rise)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담당자. 독일 프라이부르크=신세희기자

■“남은 과제는 에너지 자립의 가속화”

보봉마을의 사례를 다른 국가에 적용할 수 있을지 묻는 취재진에게 슈테픈 리스(Steffen Rise)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담당자는 “각 국가별 기준에 맞게 에너지 자립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라이부르크의 오래된 건물들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던 방식에서 빗물과 목재부산물을 냉난방 연료로 사용하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패시브 하우스로의 도달은 어려울지라도, 일상속 작은 시도들을 통해 에너지 자립의 새로운 판로를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3년째 보봉마을에 거주 중인 게어린데 슈발트(Gerlinde Schuwald)씨. 독일 프라이부르크=신세희기자

“사용량의 두 배 넘는 에너지 생산…잉여 에너지 판매로 수익 올려”

23년째 보봉마을에 거주 중인 게어린데 슈발트(Gerlinde Schuwald)씨의 집은 자체 생산한 에너지를 소비한 뒤 남은 양을 판매하는 ‘플러스 에너지 하우스’다. 에너지 자립 주택 ‘패시브 하우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주거 형태는 ‘제로 에너지’의 지름길로 꼽힌다. 슈발트씨를 통해 패시브 하우스의 효용성에 대해 알아봤다.

플러스에너지 하우스의 전력계량기는 태양광 생성된 에너지를 기록하는 계량기와 소비량을 보여주는 계량기가 따로 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신세희기자
플러스에너지 하우스 거주자인 게어린데 슈발트씨가 2023년 2월부터 24년월 1월까지 기록한 태양광 패널로 얻은 전력량. 독일 프라이부르크=신세희기자

■태양광 설비를 통해 얻어지는 전력은 어느정도 인가=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설비를 통해 모아지는 전기는 주택 유지에 필요한 전기량의 두 배에 달한다. 2001년 보봉마을로 이주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지붕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 32개를 통해 전기를 모으고 있는데, 집 안에 설치된 계량기에서 모인 전기량과 사용한 전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태양광 설비 관리가 번거롭지는 않은가=20년 주기로 변압기만 교체하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태양광 패널의 효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 떨어지겠지만, 설치 당시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매달 전기 생산량을 기록해두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5,400㎾ 가량의 전기가 만들어졌다.

플러스에너지 하우스의 거실. 남향으로 난 통유리창이 실내를 밝게 하고 온도를 높여준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신세희기자

■집 안에 에어컨 등 냉난방기기가 보이지 않는다=주방에 설치된 공기순환시스템이 90초에 한번씩 환기와 온도조절을 시켜준다. 집 안의 모든 창문은 3중창 구조로 각 유리 사이에는 아르곤가스를 주입해 단열 효과를 높였다. 보봉마을의 주택 대부분은 남향이다. 여름에는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으며 겨울에는 집안 깊숙이 빛이 들어와 온도 유지 기능을 한다.

■집을 짓는데 사용된 목재 역시 프라이부르크의 흑림에서 나온 나무이라고 들었다=처음 보봉마을에 터전을 잡게 된 건 아이들과 지속가능한 생활을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모든 소비과정에 있어서 지속가능성을 따진다. 꼭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중고로 구매하고,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사는 식이다.

보봉마을 내 플러스에너지 하우스 전경. 플러스에너지 하우스는 3중 창호와 단열재 등을 써 에너지 소비를 줄인 패시브 하우스에 지붕 형태의 태양광 시설을 설치한 공동 주택이다. 태양광 시설로 필요한 전력을 생산하고 사용할 수 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신세희기자

■보봉마을 주민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나=매년 더워지는 여름을 보며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감을 깊게 느낀다. 보봉마을은 자연과 어울리며 인간성을 지킬 수 있는 곳이다.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여 완성된 마을의 가치를 오래 보존하는 것이 이곳 주민들의 목표다.

독일 프라이부르크=김오미기자

본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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