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대 초반 인생의 절반은 고향 강릉에서, 나머지 절반은 춘천에서 보내고 ‘근무지’란 인연으로 홍천에서 생활 한지 3개월이 지났다. 군(郡)단위 지역 생활은 그 자체로 좋은 배움이다. 귀농·귀촌인의 정착률이 40%라는 통계를 접하면 예전에는 “40% 밖에 안된다”고 기사를 썼겠지만, 정착 과정의 고군분투기를 듣고 숫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춘천 중앙로 출근길 전광판에서 홍천의 주생산물로 쌀, 사과, 한우, 찰옥수수 등을 홍보하는 영상을 봤을 때는 ‘왜 더 고부가가치인 2차, 3차 산업의 상품을 소개하지 않지?’ 라고 생각했지만, 1차 산업의 상품도 거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종자를 개량하고, 기후 위기 속 상품성을 지키는 모든 생산 과정에 기술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자재값이 급등하고 외국에서 근로자를 들여올 정도로 극심한 인력난 속에서 1차 산업을 유지하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인구 6만 7,000여명인 지역에서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란 말도 실감했다. 혈연, 지연(읍·면), 학연 3개 중 1개는 반드시 엮이는 지역 사회는 결집력도 강했다. 지역 축제, 재난 현장마다 봉사단이 나와 내 일처럼 일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곳곳에서 보내주는 찰옥수수, 복숭아, 사과, 쌀, 벌나무즙 등을 맛보며 계절의 변화를 맛으로 느낀다. 하지만 이런 홍천 생활에서도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바로 ‘강원인’이란 공감대 안에 함께 있다고 느끼지 못할 때다. 처음 홍천에 왔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여기 연고 있어요?” 였다. 처음으로 ‘외지인’이 되는 경험이었다. 물론 홍천에 부임한 것을 환영해 준 지역사회에서 배타성을 느낀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다만 ‘왜 우리는 강원인이란 정체성은 공유하지 못할까’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수년 전 국립춘천박물관에 갔다가 흥미로운 전시물을 보았다. 강원인의 원형을 ‘바다 사람’과 ‘산(山) 사람’으로 분류한 전시물이었다. 바다 사람들이 해산물을 잡기 위해 쓴 도구들을 길고 날카로웠다. 반면 약초 캐기, 양봉 등을 하기 위해 산 사람들이 쓴 도구들은 상대적으로 짧고 기역자 모양이 많았다. 바다 사람들은 고기를 많이 잡고 바다에서 안녕하기를 기원하며 별신굿, 진또배기굿, 해신당 등 바다와 관련된 민속 신앙을 이어왔고, 산 사람들은 귀틀집, 너와집 등에서 살면서 잡곡을 주식으로 하며 서낭당, 산신당, 산메기, 산신제 등 다양한 민간 신앙을 이어왔다. 처한 자연, 이에 적응하며 생긴 생활양식과 가치관이 다르면서 강원특별자치도란 행정 구역만으로는 ‘강원인’이란 정체성을 만들기 어려운 것일까란 생각도 든다.
문화와 역사는 달랐지만, 지금은 연결을 넘어 초연결 시대다. 교통망은 점점 좋아지고 있고 무엇보다 스마트폰 으로 실시간으로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다. 강원지역의 산업 구조도 농림축산업에서 제조업, 서비스업으로 바뀐지 오래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생활 양식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시대다.
2016년 타계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미래 쇼크에서 “생활양식은 단순히 외적인 행동 형태 뿐만 아니라 그 행동에 함축된 가치관까지도 관계되는 것이며 따라서 사람은 자신의 자아상을 바꾸지 않는 한 생활양식의 변경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OO 사람’을 넘어 ‘강원인’이란 자아상을 갖는다면 우리의 생활양식은 달라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지금보다는 나은 생활일 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자아의 확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