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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바위에 새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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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진 강원한문고전연구소장

‘문(文)’의 뜻은 ‘글월’이다. 문자, 글, 편지 등을 포함한다. 문(文)은 가슴에 문신을 새겨 넣는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 ‘무늬’나 ‘아름답다’가 본래의 뜻이다. 몸에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는 것을 문신(文身)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암각문(巖刻文)을 바위에 새긴 글씨로 정의하지만, 글씨뿐만 아니라 부처나 기호 등을 새긴 것도 암각문에 포함된다.

고인돌 표면을 오목하게 갈아서 만든 컵 모양의 홈이 성혈이다. 선사시대에 개체보존과 종족을 이어가기 위한 기원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혈은 선사시대의 암각문이다. 춘천 신매리 고인돌에서 12개가 발견되었다. 천전리 고인돌에서 29개를 확인할 수 있다. 북산면 부귀리 고인돌에도 성혈이 선명하다.

큰 돌을 세워 신앙대상물로 삼은 돌이 선돌이다. 고인돌과 함께 대표적인 거석문화다. 선돌에 새긴 얼굴도 오래된 암각문이다. 양구선사박물관 앞에 찡그린 듯한 얼굴을 한 커다란 선돌은 신앙대상물로서 오랜 세월 동안 기능을 유지해왔다.

바위에 불상을 새긴 것이 마애불이다. 백제 시대의 작품인 서산삼존불이 대표적이다. 고려 전기쯤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철원 금학산의 석불은 자비심 가득한 부처의 모습이다. 원주 입석대 옆에 마애불좌상 얼굴은 푸근한 모습이다. 원주 주포리 미륵산 정상에는 높이 10m의 마애불좌상이 새겨졌다. 거대한 암벽을 이용하여 얼굴은 부조로, 신체는 선으로 새겼다. 원주 수암리 마애삼존불상과 평장리 마애공양보살상 등도 중요한 암각문이다.

윷놀이판처럼 보이는 하도낙서와, 팔괘로 구성된 인문석도 빠질 수 없다. 하도는 복희씨 때 황하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그려져 있었다는 그림이며, 낙서는 우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낙수에서 나온 거북이의 등에 쓰여 있었다는 글이다. 화천 삼일리 화음동정사지에 가면 김수증의 철학을 읽을 수 있는 암각문이 너럭바위 위에 새겨져 있다.

춘천 청평사 계곡으로 가면 이자현의 자취를 만나볼 수 있다. 너럭바위에 네모꼴로 판 것이 눈에 뜨인다. 고려 예종이 하사한 차를 다리기 위해 찻물을 뜨던 곳이다. 예불을 드리기 전 손을 씻던 곳이다. 고려 시대 차 유적지이며 암각문이다.

가장 많은 것은 바위에 새긴 글씨다. 비문이 일정한 형태로 다듬어진 금석에 새긴 것이라면 암각문은 자연석에 새긴 것이다. 이름을 새긴 것이 대부분이다. 경계하기 위하여 새기기도 한다. 속이 누렇고 단단한 소나무 심재를 황장목이라고 한다.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나무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반인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기 위하여 일정 구역을 특별구역으로 설정했다. 지정한 곳에는 황장금표를 세웠다. 화천, 인제, 평창, 원주 등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산삼 주산지를 보호하기 위해 산삼금표를 세우기도 했다. 인제와 정선에 표지석이 남아 있다. 만세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결의를 다지고 염원을 새긴 ‘대한민국만세’는 기미년 만세운동 전후 무렵에 새겼을 것으로 추정한다. 홍천 수하리에 가면 선열들의 뜨거운 의지가 전해진다.

암각문은 바위에 새겨진 우리의 문화요 역사다. 선사시대부터 최근까지 자연석에 다양한 형태로 새겨왔다. 종족을 이어가기 위한 서원이 서려 있다. 자신을 철학을 보이기 위해, 경계를 목적으로 새기기도 하였다. 개인적인 욕망이 드러나는 이름을 새기는 것까지 다양한 암각문은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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