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실 책상 서랍에 황금빛 찬란한 보자기에 고이고이 쌓여있는 고문서 한 권. 사실 고미술품 수집에 대한 큰 애착이 없어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했다.
아주 가끔 들여다보면서 '나도 오래된 책 하나 정도는 있어' 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앞선 정도가 전부다. 그런 고서적이 세상에 나왔다.
'규장전운(奎章全韻)'. 큼지막한 한자가 써있는 고서적은 '대정3년(1915년)'이란 발간 시기와 인쇄처를 담은 흐릿한 도장을 통해 이 책의 발간 정보를 가늠할 수 있다. 이 책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서적이 발간된 시기보다 무려 118년 앞선 1796년이다. 조선 정조가 편찬을 명해 이덕무, 윤행임, 서영보, 남공철, 이서구, 이가환 등 규장각 문신들의 참여로 1796년 간행한 운서(韻書)다.
책을 들여다 보면 한자에 한글로 어떻게 읽어야 하는 지를 표기한 것이 이채롭다. 한글표기를 들여다보면 현대에서는 쓰지 않는 고대 국어의 원형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상에 놓여있는 규장전운은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당대 최고 반열의 서예가인 차강 박기정(1874~1949) 선생이 강릉 선교장에서 공부하실 때 손에서 놓지 않았던 수택본(手澤本)이란 것. 소장자가 가까이 놓고 자주 이용해 손때가 묻은 책으로, 고미술품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같은 책이라도 소장자가 누군지에 따라 수택본에 가치를 높게 쳐준다.
차강 박기정 선생의 수택본은 왜 내 책상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을까. 지난해 8월12일 소천하신 고(故) 유용태 선생의 선물이다.
3년 전 강원일보 문화체육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유용태 선생은 황금색 보자기를 슬며시 내밀며, "문화부장이라면 이런 거 하나 정돈 가지고 있어야지"라는 말씀을 밝은 미소와 함께 건네셨다. 책을 뒤적이는 사이 거절을 표할 새도 없이 총총이 발걸음을 옮기셨다.
당시 읽어볼 수도 없는 한자가 잔뜩 들어가 있는 고서적 한 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집가가 주신 선물이기에 내용물보다는 그 헤아림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솔직히 당시 '나중에 되팔면 쏠쏠하겠지' 하는 그릇된 생각도 들었었다.
지난해 여름 유용태 선생의 비보를 접했다. 사무실 책장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책을 볼 때마다 선생 집에 찾아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각종 고문서와 수집품을 감상했던 기억, 정성껏 모은 수집품을 아무런 대가없이 각급 박물관에 기증하시는 모습이 마치 오래된 필름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스쳐 지나갔다.
천진무구한 미소 속에서 상대를 배려하고, 또 수집가라는 것에 자부심을 잃지 않았던 분으로 기억된다. 40년의 세월을 더 사신 분이셨지만, 선생과의 대화는 늘 유쾌했고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선생의 역작 '강원의 미' 3집을 발간했을 당시 인터뷰를 했다. '수집품은 가지고 즐기다가 나중에 제자리에 돌려줘야 한다' 고미술품 수집가 동반자이자 스승이셨던 아버지 유석조 선생의 유훈을 지키신다는 선생의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그 유훈에 자신이 그동안 모은 것들을 가보로 전하기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유용태 선생께서 강원일보에 선물해 주신 '규장전운'은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가이자 당대 최고의 서예가 중 한 명인 박기정 선생을 기억할 수 있도록 세상에 기꺼이 내놨다. 선생의 뜻이 그러했듯이….
기증처를 고민하던터에 원주시립역사박물관에 차강 박기정 선생 관련 유물이 다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맡길 수 있었다. 물론 기증자는 유용태 선생이다.
'옛 것'을 허투루 여기지 않고, 그 속에서 유근성(柔謹性)과 함축미(含蓄美)로 대표되는 강원인의 기개와 정체성을 찾는 여정을 쉼없이 달린 그다. 유용태 선생의 1주기를 맞아 잠시 눈을 감고 선생을 기억해 본다. "선생님,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