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원포럼]급발진 의심 제조사가 입증해야

김용래 강원자치도의원

지난 1일 발생한 서울 시청역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운전자 과실 가능성으로 감정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국과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급발진 사고를 인정한 사례가 없으며, 급발진 여부에 대한 검증도 한계가 있어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도 없다.

최근 급발진으로 추정될 수 있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는데 사고를 낸 운전자들이 고령 운전자들이라 사고 원인을 운전자 과실로 보는 주장이 다수 있었다. 게다가 운전자 과실임에도 급발진을 주장하는 운전자들도 있어 실제 급발진 사고 피해 운전자들이 처음부터 운전자 과실로 의심받는 등 사고 규명에 있어서 각종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고 피해뿐만 아니라 피해 발생 시 원인 규명에 있어서도 사고 피해 운전자가 급발진 여부를 입증해야 하므로, 급발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현행 ‘제조물책임법’ 제3조의2에서는 해당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피해자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손해가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지배 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초래됐다는 사실, 손해가 해당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피해자가 증명한 경우에만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개정이 시급하다.

2022년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사고로 숨진 고(故) 이도현군 사건을 계기로,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일명 ‘도현이법’) 제정에 대한 국민 청원이 9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어 정무위원회의 법안심사절차에 회부된 가운데 지난 18일 소비자가 제조물을 정상적으로 사용하는 중에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제조사가 결함이 없음을 입증하지 않으면 결함을 추정하는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을 권성동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제조물책임법’의 입법 방향에 대해서는 올해 3월 개정된 ‘EU 제조물책임지침’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정된 ‘EU 제조물책임지침’ 제10조4항은 기술적·과학적 복잡성으로 인해 결함과 인과관계의 입증이 과도하게 어려울 경우 결함과 인과관계가 추정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미국식 디스커버리제도(증거개시제도)를 본떠서 피해자가 결함 관련 자료를 제조업체 등에게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등 피해자 보호를 두텁게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EU 제조물책임지침’을 EU 회원국들이 각국 관련법에 반영하기 때문에 앞으로 제조물 책임에 대한 국제 기준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제조물에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강릉 급발진 사고를 계기로 필자가 ‘강원특별자치도 급발진 의심 사고 대비 및 피해자 등 지원 조례’를 제정한 후, 강원자치도는 7월부터 도민을 대상으로 한 급발진 관련 안전교육을 추진하기로 했다. 급발진 사고 피해자에 대한 법률·심리 상담 지원, 내년부터 강원자치도 공영차량 구입 시 기록장비 시범 설치를 진행하기로 했다. 필자 또한 강원자치도의 정책 추진 및 제도개선을 위해 앞장설 것이다. 강원자치도도 체계적인 사고 예방 및 대응시스템을 구축해 급발진 사고의 선진적 대응 모델로써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제조물책임법’이 속히 개정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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