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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개근거지’

교육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회화 과정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삶의 지혜를 전하고 받아들이는 생존의 원천이다. 원시인들이 갖가지 위험을 몸으로 감당하며 얻은 반복 학습이 체계화돼 문화와 문명으로 자리 잡아 왔다. 체득하는 동안 목숨을 잃기도 하고,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 뜻밖의 성취와 변화를 한다. ▼의무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누구나 성실함의 상징으로 ‘개근’을 떠올린다. 개근은 학교나 직장 등에 일정 기간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하거나 출근하는 경우를 이른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착실하게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책임을 다하는 성실함의 척도가 개근인 셈이다. 학교 다닐 때 우등상은 못 받았어도 ‘개근상’은 받았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곤 했다. 올바른 민주 시민이면 누구나 그걸 존중하고 모범으로 삼는다. ▼거지는 가난의 결과물이자 경쟁사회의 루저인 양 인식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딱한 처지가 됐지만 우리 공동체의 일부분이다. 구성원들이 감싸 안고 함께 헤쳐 나가야 할 약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소득 재분배니, 빈부격차 해소이니 하는 게 모두 포용하고 감싸고 가자는 얘기다. 그들을 방치하거나 무관심으로 대하면 제대로 된 공동체라 할 수 없다. ▼초등생들 사이에 ‘개근거지’라는 속어가 유행이란다. 참으로 절묘한 단어의 조합이다. 교육제도의 관용성으로 가족 해외여행이 일반화된 세태 속에, 학교에 빠짐없이 등교해 개근을 하는 친구가 실제로는 거지라는 비하가 담겨 있다니 뒷맛이 씁쓸하다. 맞벌이, N잡러로 팍팍한 가계를 꾸려가기 바쁜 부모들의 사정을 초등생들이 이해하긴 쉽지 않지만, 국내 여행은 친구들에게 얘기조차 못 하는 동심의 상처는 또 얼마나 클지 가늠이 된다. 성실하고 부지런히 살면 당연히 경제적인 여유가 따르고, 맘만 먹으면 언제든 사랑하는 가족, 자녀들과 함께 세계 여행을 다녀와 자신 있게 주변에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사회는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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