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강원도] 여성이기에 대물림되는 삶과 갈등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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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황정은 ‘파묘'
철원군 갈말읍 지경리 배경
전형성 독특한 구성으로 상쇄

소설 ‘파묘(破墓)’는 황정은 작가가 펴낸 연작소설 ‘연년세세(창비 刊)’에 수록된 작품으로 철원군 갈말읍 지경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2019년 김승옥 문학상을 수상한 이 소설은 화자가 가족 또는 사회공동체 안에서 여성으로서 겪어야 하는 갈등 상황이 이야기의 얼개가 되는 전형성을 드러내고 있지만 독특한 소재와 구성의 단단함 그리고 묘사의 탁월함이 그러한 기시감을 충분히 상쇄하는 작품이다. 모두 4개의 소설이 실린 ‘연년세세’는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2020년)’에 선정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그 가운데 백미(白眉)는 단연 ‘파묘’다. 한 집 안의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순일이 친할아버지 무덤의 ‘파묘’를 결정하기까지, 또 실행하면서 만나야 하는 불편하지만 하릴없는 현실들이 슬프고 또 아리게 다가온다.

황 작가는 이를 위한 장치로 등장인물을 모두 이름으로 부른다. “이순일이 꼭지를 떼어내고 반으로 가른 곶감을 운전석 쪽으로 내밀었다. 한세진은 전방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곶감을 받아먹었다”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분명 이순일과 한세진은 엄마와 딸의 관계인데도 말이다. 그러고 나니 한 가족인데도 이씨와 한씨로 나뉜 진영(?)의 구분은 명징해진다. 아무도 이순일의 편은 없는 것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철원 토성리 갈골에서 태어난 이순일은 부모와 사별한 뒤 갈말읍 지경리에 살던 할아버지 손에 자란다.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도 매년 철원으로 성묘를 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남편의 핀잔과 아이들의 무관심뿐이다. 현재는 맏딸 한영진의 살림과 육아를 돕고 있는 이순일은 아픈 무릎 때문에 더 이상 성묘가 힘들 것으로 판단해 할아버지 묘를 파묘하기로 결심한다.

파묘하는 날, 둘째 딸 한세진과 함께 철원으로 향하는 이순일은 자신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파헤쳐진 할아버지 묘를 발견한다. 그리고 수습된 할아버지의 유해는 먼저 내려간 아저씨들(지경리의 농부들)에 의해 이순일 없이, 어떤 존중도 없이 태워진다. 이순일과 한세진이 산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묘사한 “이순일은 앞서가면서 방해가 되는 가지들을 손으로 잡았다가 놓았는데 그때마다 뒤를 따르는 한세진의 이마며 눈언저리를 향해 가느다란 가지들이 회초리처럼 날아왔다”라는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여성으로서의 삶이 결국은 대물림된다는 것을 말할 수도, 아니면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딸에 대한 회환과 질책의 비유적인 표현일 수도 있을 듯하다. 작가는 왜 소설의 배경을 철원으로 했을까. 할아버지의 묫자리는 최전방 부대가 자리 잡은 산속이고, 초소에 신분증을 맡겨야만 올라갈 수 있는, 쉽지 않은 현실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장 설득력 있는 장소가 그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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