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어릴적 영어에 재능…지금은 세탁회사 ‘성실한 찐기씨’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우리 주변의 우영우'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춘천 백진기씨

6~7세에 배운적 없는 영어 구사해

집중력 부족해 받은 검사 자폐 진단

게임에 빠져 체중 늘고 힘든 시간도

어머니 관심속 살빼고 2년째 근무중

◇지난 21일 춘천에 위치한 A 세탁산업에서 일하는 백진기씨를 만나 진기씨의 하루 일과를 함께했다. 사진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진기씨의 모습.

“모든 부모에게는 한번쯤 ‘내 아이가 특별한 거 아닐까?'' 싶은 날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나의 아버지에게 2000년 11월17일이 바로 그런 날이었어요.”

최근 흥행 중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첫 시작을 여는 말이다. 드라마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 ‘우영우''가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무법인 한바다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다.

춘천에 사는 장경옥(62)씨는 막내 아들 백진기(25)씨가 태어난 뒤부터 매일 특별한 일들을 경험했다. 백씨는 6~7살 때, 배운 적 없는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영어회화 수준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비슷했다. 진기씨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했지만 길을 가는 미국 사람을 쫓아가 영어로 말을 걸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씨는 눈을 감고 춘천 명동을 걷는 아들이 날이 갈수록 또래에 비해 집중력도 떨어지고 말도 어눌한 모습을 보며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받아 본 자폐 검사에서 백씨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다.

‘우영우''가 ‘법''에 재능이 있던 것처럼 진기씨는 ‘언어''에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모든 자폐인이 ‘우영우''처럼 재능이 있는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기씨는 20대초반 휴대폰 게임에 빠졌다. 하루의 대부분을 휴대폰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체중은 110㎏으로 늘었다.

하지만 어머니 장씨의 지속적인 관심과 진기씨의 노력 덕분에 체중 40㎏을 감량했고 2년째 춘천에 위치한 A 세탁산업에서 성실히 일하고 있다.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기씨는 애칭 ‘찐기''로 불린다. 김현우 A 세탁산업 실장은 “찐기가 일도 잘하고 성실해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에 300% 만족한다”고 말했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같은 ‘우영우''가 사람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것처럼 진기씨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도 남들과 똑같은 정말 사랑스러운 아들”이라며 “자폐인 모두가 사람들 사이에서 녹아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후 6시쯤 일이 끝나 집으로 가는 진기씨에게 “앞으로 꿈이 뭐예요?”라고 묻자 진기씨는 “어... 어...”하며 고민하기를 반복하다가 갑자기 “다 같이 잘 살고 싶다!”고 외쳤다. 그리고는 이어폰을 낀 채 인파 속으로 걸어갔다.

김민희기자 minimi@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