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있는 날이면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대회를 구경하기도 했다. 어려웠던 시절인 만큼 입상만 하면 앞날이 보장되니 당시에는 장래 희망을 미스코리아로 적어 내는 어린이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성인권이 재조명되면서 각종 미인 대회는 성(性)을 상품화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특히 논란이 된 것은 수영복 심사였다. 미녀의 기준이 얼굴과 몸매가 전부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걸그룹의 섹시 경쟁도 성 상품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차별화를 위해 기획사들은 더 강한 노출, 더 섹시한 퍼포먼스를 추구한다. 걸그룹의 섹시 경쟁이 우려스러운 것은 어린 여학생에겐 모방심리를 부추기고 남자들에겐 성적(性的) 충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요즘 여자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조사하면 열에 아홉이 걸그룹이 되겠다고 한다. 물론 자본주의는 ‘섹시함'도 이용하는 경제체제다. 하지만 어린 걸그룹의 야한 춤을 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2년 전 유네스코는 보고서를 통해 애플의 시리, 아마존의 알렉사, 삼성의 빅스비,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타나, 구글의 구글어시스턴트 등이 여성 음성으로만 이용 가능하거나 여성 음성이 기본값으로 설정돼 있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유네스코는 “스마트 기기의 여성화는 여자는 순종적이고 친절해 남을 돕는 서비스 직업에 적합하다는 편견을 부추긴다. 또 험한 말을 들어도 고분고분한 모습은 여성에 대한 잘못된 성 인식을 악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지금 우리는 AI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가상인간을 만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젊고, 날씬하고,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페미니즘의 대중화로 이뤄낸 21세기 여성상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아직 우리 사회는 겉모습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라면 성형수술을 마다하지 않는 성인지 부조화가 심각하다. 신기술이 자칫 여성들이 다시 성적 대상화가 되는 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