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월요칼럼] 법정 문화도시의 우선순위

이영진 음악평론가

‘우선순위’라는 일상용어가 있다. 주택청약에도 우선순위가 있고, 신입생을 선발하는 대학 입시에도 우선순위가 적용된다. 우선순위와 관련된 대표적 사자성어로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네 서열문화를 가장 합당하게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심지어 과거 서열과 순서를 일컫는 표현으로 ‘동대문 지게꾼도 순서가 있다’는 말을 자주 사용했던 때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선출직 기관장이 정책을 수립할 때 시대적 요구와 유권자와의 공약 이행, 그리고 정치적 상황이 변수로 작용해 정책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따라서 당초 추진정책 목록에 있던 사업의 순위가 뒤바뀌고, 그로 인해 시급한 사업이 아니면 아예 배제되거나 뒤로 밀리는 사례가 다반사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 대표적 배제 대상이 문화예술 분야다.

'지역문화진흥법'이라는게 있다. 그 법에 근거하면 ‘예술·산업·관광·전통·역사 등 지역별 특색 있는 문화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문화 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정한 도시를 ’문화도시‘라 정의했다. 이 진흥법에 따라 2019년 1차로, 전국 7개 도시를 법정(法定) ’문화도시‘로 선정했고, 도내에선 원주시가 지정됐다. 당시 문화도시로 선정된 원주시의 사업명은 '시민이 만들어가는 창의문화도시 원주'였다. 그 후, 2021년에 강릉시와 춘천시가 2차 ’문화도시‘에 선정됐는데, 강릉시는 '아름답고, 쾌적하며, 재미있는 문화도시 시나미 강릉'을, 춘천시는 '시민의 일상이 문화가 되고 문화적 삶이 보장되는 전환문화도시 춘천'을 사업명으로 내세웠다.

문화란 사전적 의미로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 및 그 과정에서 이뤄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되어 있다. 매우 포괄적이고 다담론적 개념을 담고 있다. 그런데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된 춘천·원주·강릉시가 추구하는 문화 어젠다 역시 포괄적이며 다담론적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이를테면 창의적인 문화도시를 기획한 원주나, 쾌적한 환경의 문화도시를 조성하겠다는 강릉이나, 문화적 삶이 일상이 되도록 한다는 춘천이나, 결국 오십보백보인 셈이다. 그냥 두루뭉술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도시 특성을 살린 독창성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는 얘기다.

물론 사업명이므로 포괄적 내용을 담아야겠지만, 오히려 기업도시를 표방한 원주는 상주 기업과의 상생 전략을 우선순위로 하고, 쾌적한 환경을 앞세운 강릉은 전통문화 계승과 해양생태계에 역점을 둔 특화된 도시를 조성하면 차별화된 문화도시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십 수 년동안 ‘문화예술의 도시’라고 외쳐왔던 춘천은, ‘예술’을 전방위적으로 내세워 문화도시를 축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작 문화도시 어젠다에 ‘예술’은 언급돼 있지 않음이 실로 우려된다. 우선순위에서 예술을 배제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스페인의 빌바오는,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을만큼 ‘예술’을 문화에 덧입혀 도시를 재생한 대표적인 도시다. 일본의 나오시마 섬은 ’예술의 섬‘으로 불리우는 곳으로 연간 5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그러나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문화예술의 도시‘ 춘천엔 아직 번듯한 시립미술관 조차 없다. 물론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메세나의 인프라도 조성돼 있지 않은 도시다. 그렇다면 문화도시를 조성하려는 지자체는, 과연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 그것이 당연히 궁금해 진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지자체의 우선순위를 맹렬하게 지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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