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경로의존성과 자기편의주의

이덕수 은퇴디자인연구소장 한림대 객원교수

은퇴자들이 빠져서는 안된다고 경계하는 것중의 하나가 ‘경로의존성’이다. ‘경로의존성’은 하나의 방법에 익숙해지면 그 방법이 잘못된 경우에도 그 경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경로의존성으로 1천만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는 1차세계대전의 비극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 원인이 돌격전술에 의해 전쟁의 승패가 좌우되던 시대에 전쟁을 몸에 익힌 일선 지휘관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해 온 것, 내 생각만 옳다고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경로의존성은 물론 편협한 자신의 세계에 기인한다. 나와 다른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담스러워 하며, 때론 견디기 어려우므로 공격에 나서기도 한다. 이에 대한 대처방법으로 대화,독서 등을 권한다. 내가 모르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세계가 있고 그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로의존성은 은퇴자의 문제만은 아니다. 어느 분야에나 있을 수 있다. 심지어 정치나 경제 쪽에도 있을 수 있다. 최근에 있었던 일로 대통령 전용기에 특정 언론사는 타지 말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데 상대는 오히려 국익을 해치므로 탈 자격이 없다는 것인데, 상대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나도 나름 열심히 임무수행을 하는 것이고 결국은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누가 나쁜 일이라고 한다면 억울할 수 있다.

이태원참사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 쪽에서는 처음 신고가 있고부터 몇시간이 흐르는동안 뭘 했냐고 하면서 답답해 하는 것이지만 다른 편에서는 애초부터 주임무는 그게 아니었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같은 행위와 결과에 대하여 국익을 해쳤느냐, 또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느냐의 판단 여부가 입장과 경험에 따라 크게 다른 것이다. 나는 내 경험과 기준으로, 또 상대는 그의 경험과 기준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개념에 자기편의주의가 있다. 자기편의주의는 자신의 편리와 이익을 판단과 행위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사례로 대략 이런 것들을 볼 수 있다. 우선 봉건사회의 영주다. 봉건시대의 영주는 자신의 봉토 안에서는 무엇이든 자기마음대로다. 땅, 방앗간 등 봉토 내의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고 기사와 농노는 영주를 위해 일한다. 영주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은 봉토 내에서는 아무 것도 없다.

영주가 봉토내에서 가졌던 생각, ‘모든 것은 나를 위한 것이다’ 라는 경로의존성과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하면 된다’는 자기편의주의는 역설적으로 십자군원정의 여파로 시민계급이 대두하면서 봉건시대의 종말과 함께 끝나게 된다. 무지와 좁은 마음가짐으로 자라난 사람들이 동방의 화려한 도시와 고대문명에 접하게 되면서 지적인 각성을 경험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자기들이 세상의 중심(중화)이요, 최고라는 중국의 경로의존성, 자기편의주의는 훨씬 후 산업화된 열강의 침략으로 막을 내린다. 우리가 최고가 아니었고,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

‘나는 옳고 잘 하는데 이상한 사람들이 나를 흠집내려 한다’거나 ‘나는 이 자리에 있으므로 마음대로 해도 되는거야’ 한다면 경로의존성, 자기편의주의라는 점에서 봉건영주와 명제국의 황제와 다를 바 없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경로의존성과 자기편의주의로부터 스스로의 각성에 의해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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