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단상]고향의 첫눈

김광창 수필가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 한 지 10년이 지났다. 먼 객지에서 문득문득 고향에 가고 싶고 보고 싶어지는 이들이 생각나는 것은 아마도 나만은 아닐 것 같다. 어떤 이는 고향은 따뜻하고 평생 그리운 어머니의 품에 비유하기도 한다. 나이 들어 낯선 타향에서 눈 오는 창가에 서면, 왠지 젊었을 적 고향에 내리던 눈이 문득 문득 그리워지는 마음에 아이처럼 마냥 어린 시절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며칠 전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온 적이 있었다. 창가에 서서 한참을 내다보다가 옆에 앉아있던 집사람에게 한마디 부탁을 했다. 오는 눈이 모두 녹아 없어지고 옛날 장티푸스만큼이나 전염력이 강한 코로나19가 사라진 후에 당신과 함께 고향 춘천엘 꼭 한번 가보자고 말했다. 집사람도 나이 여든이 넘어 옛 생각이 많아진 탓인지 옛날 고향에서 있었던 추억들을 꺼내는 경우가 더욱 잦아졌다. 이제 타향살이가 무척 길게 느껴져서 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향에 가면,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평안남도가 고향이었던 K형님이 돌아가시고 한 달 후에 형수님마저 돌아가셨다. 게다가 직장동료와 학교를 함께 다니던 동창생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 이제 만나야 할 친구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요즘은, 고향에서 친구의 전화를 받거나 선배님들의 전화가 오면 깜짝 깜짝 놀란다.

요즘 이곳 송도는 1년만 지나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어느 날 갑자기 간선도로가 생기고 낮은 집터에 높은 빌딩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선다. 어쩌다 찾아간 고향 춘천의 거리 풍경도 마찬가지다. 있던 집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이층집이 생기는 고향의 변하는 모습을 보면 새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 잊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더욱 섭섭할 때는 고향에서 한 삼십여 년 간 이웃에서 살던 친했던 이웃이 어느 날 갑자기 사정에 의해 타향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다. 나는 그 소식을 접하고 한참 동안을 멍하니 선 채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보고 싶어지는 이 애틋한 마음을 나처럼 고향을 찾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어느 누가 ‘고향을 어머님 품’이라고 말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 말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 요즘은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고 마음 편하면 제2의 고향이라고 하지만, 반세기는 족히 살아야 그곳 사람이 되지 않을까. 이제 고향 떠난 지 오래되었고 팔순 잔치를 치른 지 벌써 몇 년이 지난 나에게는 정말 정말 가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곳이 고향이다. 내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더 늦기 전에 올 겨울엔 꼭 고향 춘천에 가서 그리운 친구들을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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