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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호등]풍년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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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의 역설. 풍년이 들었지만, 농민들의 소득은 오히려 감소한다. 농사가 잘되면 잘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진다. 작년에 생산한 쌀도 아직 곳간에 쌓여있는데, 올해도 쌀이 많이 생산되면서 곳간에 자리가 부족하다.

전반적으로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공급량도 매년 증가하지만 쌀 소비량은 또 매년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56.9㎏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30년 전인 1991년 116.3㎏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치라고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매년 이렇게 '풍년의 역설'이 반복되다 보면 농사를 짓는 농민분들의 마음이 꺾이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차라리 농사를 짓지 않는 게 이득이라는 농민분도 이번 가을 적지 않게 뵐 수 있었다. 봄 가뭄에도, 여름 태풍에도 꺾이지 않던 벼들을 농민 스스로 꺾는 날이 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쌀은 정말 중요하다. 쌀 소비가 줄어든다고, 쌀 생산도 줄어서는 안 된다. 현 정부의 중요 국정 과제 중 하나는 식량 주권 확보다. 그리고 식량 주권 확보의 가장 중요한 작물은 쌀이다. 줄어드는 쌀 소비에도 쌀은 여전히 우리나라 국민들의 먹거리 근간인 셈이다. 쌀은 가뜩이나 낮은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을 지탱해 줄 수 있는 핵심 작물이다.

올해 여름에 썼던 기사에 '올해도' 풍년의 역설 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매년 수확 철만 되면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는 이야기이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내년에도 그리고 그 후년에도 비슷한 주제로 기사를 쓸 것이다. 한국축구의 문제점을 지적하라면 예나 지금이나 골 결정력 부족과 수비 불안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풍년의 역설'이란 단어도 그렇게 느껴지는 시기가 올까 두렵다. 의례적인 현상으로 인식되는 순간부터는 더 이상 '풍년의 역설'에 대해 시민들이 느끼는 위기감도, 정부에서 대책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무뎌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몇 달 전 취재를 위해 주말에 농민께 연락을 드린 적이 있다. "주말에 연락드려 죄송한데..." 라는 말로 운을 뗐다. 그런데 그분의 대답은 의외였다. 밝은 목소리로 "농민한테 주말이 어딨어요. 오늘도 어차피 밭에 가는데 주말, 주중 구분이 없죠."라고 대답이 돌아왔다. 농민들은 오늘도 주말 구분없이 밤낮으로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다. 세상 만사가 인풋(투자)과 아웃풋(결과)의 균형이 맞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농민들이 고생하신 만큼의 합당한 보상은 돌아와야 한다.

농민들은 올해 45년만의 쌀값 최대 폭락을 주장하며 거리로 나왔다. 이제 정말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농민들 스스로 벼들을 꺾어버리기 전에, 식량 자급률이 더 떨어지기 전에 대책 마련을 해야할 것이다. 물론 농민들과 지자체에서 자구책 마련에도 나서야 한다. 나부터 오늘 저녁은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어야겠다.

농민들에게 풍년은 단어 뜻 그대로 풍족했던 한해로 기억됐으면 한다. 곳간이 넉넉해지는 만큼 마음도 넉넉해져야 한다. 풍년의 역설에 대해 정부는 쌀 소비 감소와 과잉 생산을 이야기하지만, 농민들은 과잉 수입과 시장 격리 대책의 실패를 이야기한다. 지난 10월, 농민들이 거리로 나와 불태운 것은 수입 쌀이지만 타들어 간 것은 비단 수입 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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