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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운동장 없는 학교’

과거 학교 운동회는 동심들에겐 최고의 축제였다. 그런 축제 마당이 탈 없이 펼쳐지려면 하늘이 도와줘야 했다. 가을 땡볕에 새까맣게 그을리며 몇 날 며칠 전교생이 맹연습한 매스게임도 운동회 날 비라도 내렸다가는 말짱 도루묵이다. 행여 운동회가 취소라도 될까 봐 며칠 전부터 아이들은 날씨에 애가 닳았다. 달무리 지면 다음 날 비가 온다는 어른들 말에 목 빼고 밤하늘을 올려다봤던 기억들이 있다. 쨍한 가을볕에 만국기, 하얀 석회 가루로 트랙이 말끔히 새로 단장된 흙 운동장. 우리나라에 신식교육이 도입된 이래 초등학교 운동장은 지역사회 생활의 중요한 중심지가 돼 왔다. ▼지방에서 초등학교 운동장은 지역공동체 집결과 의식의 장소가 됐고, 초등학교의 운동회는 마을의 주민과 유지가 모두 참가하는 지역의 축제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은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선거의 유세 장소가 되는 것은 물론 천재지변을 비롯한 국가 유사시에 긴요히 쓰이는 공간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뛰고 논 추억이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공부는 그렇다치고 어린 학생들이 마음 놓고 놀 만한 변변한 운동장 하나 없다면 학교라 부르기조차 부끄럽다. ▼강원지역에 사실상 ‘운동장 없는 학교’가 등장했다. 학생이 몰리는 도심 주거 밀집지역 학교들이 운동장에 새 건물을 증축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학교 운동장이 점점 좁아지는 추세다. 춘천시내 최대 아파트 밀집지역인 퇴계동에 지난해 개교한 A초교. 전교생 1,000여명인 이 학교는 지난달부터 운동장 한쪽에 교실 및 급식소로 쓸 3층 규모의 건물을 새로 짓고 있다. 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학습할 공간이 부족해지자 내린 결정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은 맨땅의 운동장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바람 한 점, 구석에 자라는 들꽃 한 포기에서 뭔가를 느끼고 배울 수 있다. 학교 운동장은 단순히 교육의 수단을 넘어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교육 당국은 물론 자치단체가 함께 개선책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권혁순논설주간·hsgw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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