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노인공화국’

‘시간의 흐름''보다 세상에 더 확실한 것은 없다. 세월은 고장도 없이 잘도 흘러간다. 무심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시간을 당할 자 아무도 없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잡아보겠다던 진시황은 불로장생약이라 믿은 수은에 중독돼 사망했다. 청춘의 푸르름과 비교할 때 노년의 잿빛은 더 도드라진다.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영화 ‘은교'' 속 명대사 그대로다. ▼열정적이고 성공적인 젊음을 보내도 힘겨운 노년의 삶을 피할 수는 없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격을 지키는 ‘아름다운 황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지혜를 쌓은 노인 하나가 사라지는 것을 두고 큰 박물관 하나가 무너지는 것과 같다는 격언이 있는 등 온갖 ‘예찬''을 늘어놓아도 늙음은 서럽고 쓸쓸하다. “나 여기 있다”고 소리쳐 봐야 들리지 않는다. 잊히고, 가난해지고, 사라져 간다. 자연의 법칙이고, 삶의 섭리다. 그래서 일찌감치 시인 예이츠가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의 첫 구절에서 단언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나라가 아니라 어떤 ‘곳''도 없다. 나이를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생 100세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과거에도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대다수의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장수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가 2040년에 1,000만가구를 넘어선다고 한다.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계속되면서 2050년에는 전체 가구의 절반가량이 고령자 가구로 채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한 가구의 평균 가구원 수도 2040년 이후부터는 2명 아래로 떨어진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통계다. ▼천수(天壽)를 누리며 오래 사는 건 축복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축복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여건에 처해 있다. 고령화 속도가 전례없이 빠르게 진행된 탓에 노인 빈곤, 질병, 간병, 고독사 등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권혁순논설주간·hsgw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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