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영어의 힘'

1945년 9월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의 포고 제5조는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였다. 적어도 미 군정청을 둘러싼 당시 임시정부 주변의 공식 언어는 영어였다. 지주 집안으로 일찍이 구미 유학 기회를 잡은 사람들, 미 선교사와 어울려 영어 좀 쓴다는 이들이 득세했다. 유창한 영어가 곧 정치 권력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중국과 동아시아 문제에 밝았던 미 언론인 에드거 스노는 그런 해방 정국을 ‘통역관 정치''라고 비꼬았다. 그때 활동한 수백명의 통역관은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나 총리실의 핵심 보좌관들로, 파란 눈의 권부 실력자들의 한국관(韓國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인구는 세계 인구의 8%에 불과하지만 인터넷, 학술저널 등 영어의 쓰임새는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인에게 영어란 평생 다 못 한 숙제와도 같다. “영어 하나라도 건지면 된다”는 심정에 자식을 ‘묻지마 유학''이라도 보내려는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처럼 영어에 열심인 나라도 없다. 또 가장들은 해외에 자녀, 아내를 보내 놓고 ‘기러기아빠'' 노릇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다. 영어학원 등 영어 관련 사교육비만 연간 수십조원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영어 실력은 실망스러울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 상품이 ‘영어마을''이다. 해외 어학연수를 가지 않고 국내에서 영어체험타운을 조성해 영어를 익히자는 취지다. 2006년 손학규 당시 경기도지사가 주도해 경기도 파주에 들어선 경기영어마을이 대표적이다. 1,700억원이 투입됐다. 원어민 강사 100명을 포함, 200여명의 강사진이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강원판 제주영어교육도시''가 탄생할지 주목된다. 제주영어교육도시가 연간 수천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내며 제주특별자치도의 특례 사업 중 최대 성과로 꼽히면서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이를 모델로 한 강원형 교육도시 조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강원판 제주영어교육도시''가 어떻게 둥지를 틀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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